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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舊 소련의 '자기 붕괴'에서 배워야한다

[아침논단] 舊 소련의 '자기 붕괴'에서 배워야한다

  • 전홍찬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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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4.03 22:46

    北核 위협 강도 나날이 높아져… '핵무력화'나 '체제 붕괴'가 대안
    핵탄두 4만5000발 가졌던 소련도 美의 핵 억지력과 내부 문제로 붕괴
    민심 이반 징후 뚜렷해지는 북한, 외부 세계 현실 北 내부에 알려야

    전홍찬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수년간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제재도 가했고, 포용도 시도했고, 6자회담도 열어봤지만 결국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20대 김정은이 새 지도자로 등장했을 때 세계는 북한 체제가 바뀔 가능성에 대해 잠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김정은은 오히려 더 호전적인 언행과 초강경 정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위협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전문가는 짐작한다. 문제는 핵무기 개발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협박 강도도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하는 순간 한국은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통일 비용을 걱정했으나, 이제 그건 사치스러운 걱정이 되었다. 핵무기를 배경으로 한 위협에 대처하는 비용은 계산조차 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북한 핵무기 무력화 아니면 북한 체제 붕괴, 두 가지밖에 없다. 구소련 붕괴 사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소련은 핵탄두를 4만5000발 이상 가진 군사적 초강대국이었으나 총알 한 발 못 쓰고 붕괴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먼저 미국이 구축한 핵 억지력이 소련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둘째로, 소련은 내부 취약성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가진 비효율과 공산당 권력 독점이 야기한 부정부패에 국민은 사회주의를 버렸다.

    이 중 한국의 핵 억지력 보유는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참고 대상은 둘째 요소이다. 소련 말기에 나타났던 민심 이반이 북한에서도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김정은 정권은 하루가 다르게 사회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 농촌 장마당과 도시 암시장이 소비재 공급원으로 국영 상점을 대체한 상태이다. 소련 말기처럼 국가 계획경제 시스템이 거의 붕괴한 셈이다. 최근에는 자국 화폐보다 미 달러나 중국 인민폐를 더 선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암거래로 외화를 축적한 상인들은 부패 관리들을 매수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이들이 북한 사회에서 새로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제거할 수도 없다. 2009년에 무모하게 실시했던 화폐개혁이 암시장에 치명타를 가한 후 북한 경제 전체가 더욱 악화되었던 것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서방에 대한 정보였다. 국가 통제 체제가 이완됨에 따라 서방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능력에도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철의 장막 속에 있던 동유럽과 소련 사람들이 서방 세계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를 알게 된 이후 체제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사라졌다. 유사한 과정이 지금 북한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북한 사회에 이미 많은 컴퓨터와 통신 기기가 퍼져 있다. 각각 200만대와 150만대로 추정되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통해 많은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 현실을 알기 시작했다. 숨기기에 어렵지 않은 USB 메모리 덕분에 남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북한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북한 젊은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파일을 공유한다. 그만큼 자유와 풍요에 대한 간접 경험 욕구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부패 관리들은 단속 자체보다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는 뇌물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한다. 한국 걸 그룹 춤을 돈 받고 가르치는 곳까지 등장했다면 북한 사회에서 주체사상이 설 자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동유럽과 소련 국민이 그랬듯이 정부가 선전한 '노동자들의 낙원'은 거짓이란 것을 북한 사람들도 깨닫고 있다. 이런 징후가 나타난 뒤 사회주의 체제가 오래 버티는 예가 없었다.

    한·미 양국은 핵 억지력 구축 대신 북한 핵무기 사용 임박 시 미사일로 선제 타격한다는 대응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최근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이 전략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이스라엘처럼 전 국민이 똘똘 뭉쳐 전면전도 불사한다면 모를까 섣부른 선제공격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북한 핵무기 위협에서 벗어나는 더 안전하고 검증된 방법은 결국 외부 세계 현실을 북한에 더 많이 확산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