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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석가탑

[만물상] 석가탑

  •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 2013.04.03 22:49

    경주 불국사에서 서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영지(影池)'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있다. 백제 석공(石工)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석가탑을 세우려고 서라벌로 떠난 아사달이 돌아오지 않자 아사녀도 서라벌로 왔다가 남편을 만나지 못하자 연못에 빠져 죽는다. 저수지 한 쪽에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石佛)이 하나 서 있다. 아사달이 아사녀의 넋을 위로하려고 세운 것이라 전해 온다.

    ▶돌을 잘 다루는 사람이 많은 백제에서도 아사달은 손꼽히는 석수장이였다. 남편 얼굴을 보러 온 아사녀는 날마다 불국사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듣는다. 한 스님이 "탑이 다 되면 요 앞 연못에 그림자가 비칠 것이니 그때는 낭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아사녀는 지극정성으로 저수지에 탑 그림자가 비치기를 빌지만 탑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사녀는 상심한 끝에 연못에 몸을 던진다. 석가탑이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으로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리는 사연이다.

    ▶아사달·아사녀 이야기로부터 1271년, 석가탑이 신비의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은 석가탑의 갈라진 틈을 보수하기 위해 탑 전면 해체 작업에 들어가 그제 탑 핵심부인 사리공(孔)을 공개했다.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탑 속에 만든 공간이다. 석가탑은 742년 건립 후 지금까지 세 번 해체·복원됐지만 탑 아래 땅밑까지 파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석가탑은 그동안 지진, 벼락에다 도굴까지 풍파도 많이 겪었다. 가장 최근에 한 해체 작업은 1966년에 있었다. 도굴범이 훼손한 탑을 바로잡기 위한 공사였다. 그때 탑 안에서 화려한 사리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을 비롯해 귀중한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원로 미술사학자 정영호는 천년 넘은 다라니경에 좀벌레 여러 마리가 있어 핀셋으로 집어 병에 넣어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불국사 주지 스님이 "그것도 살생"이라며 말렸다고 회고했다.

    ▶흔히 중국을 전탑(塼塔·벽돌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木塔)의 나라, 한국을 석탑(石塔)의 나라라고 한다. 전란과 화재에도 버틸 수 있게 돌로 탑을 만든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 솜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석탑이 많다는 얘기다. 선조들이 불국사와 석가탑·다보탑을 세우며 통일신라의 안녕과 번영을 빌었듯 이번 석가탑 복원에 우리 시대의 간절한 소망들을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