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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한한 힘/신비한 몸

[과학,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다] "봉사할 때 즐거운 건 뇌의 작용"

[과학,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다] "봉사할 때 즐거운 건 뇌의 작용"

  • 권준수·서울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입력 : 2013.03.30 03:03

뇌과학 "개인의 행복도 계량할 수 있다"
봉사할 때 뇌 활동, MRI로 촬영해보면 이기적 만족인 '보상'의 감정 활성화돼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샘 해리스 지음|강명신 옮김
시공사|460쪽|1만7000원

제목만 보면 어렵고 전문적인 신학 서적처럼 보이지만, 보편적 '행복'에 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종교가 주는 마음의 안정이나 높은 윤리의식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준다는 오랜 믿음에 도전한다. 어느 곳에서는 죄가 되는데 다른 곳에서는 용인된다는 도덕적 상대주의에도 반기를 든다.

저자 샘 해리스는 이런 문제에 뇌과학적 방법을 접목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남을 돕거나 사회적으로 도움되는 일을 할 때, 우리 마음은 '나는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뇌의 활동을 MRI(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해보면 '보상'과 관련된 감정이 활성화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타적 행위를 통한 이기적 만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누군가로부터 음침한 제안을 받고 그것을 받아들일 경우, 뇌는 이런 제안에 넘어가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저자는 2005년 종교에 대한 과학적 논쟁에 불을 붙인 '종교의 종말(The end of faith)'을 썼던 철학자이자 뇌인지과학자다. '자유 의지는 없다(Free will)' 등의 저작을 통해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사고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에게 있어 도덕이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어떤 행동이나 상황이 행복을 증가시키는가'에 대한 답도 결국 뇌과학 연구를 통해 밝힐 수 있다고 본다.

해리스는 인간의 행복이 세상의 사건과 뇌의 상태에 의존하므로 과학적 사실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도덕적 질문에 대한 답은 종교가 아닌 과학에서 나올 수 있으며, 과학적 사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나아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말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에민쥔의‘웃음 시리즈’중 작품‘기억1’. 그림 속 인물은 진짜 웃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뇌를 MRI로 촬영해 보면 행복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위에민쥔 제공
예를 들어 '행복'의 정도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어떠한 행동이 행복의 정도를 최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한 과학적 해답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도덕의 풍경(moral landscape)' 속에서 행복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인 '도덕의 풍경'은 저자가 생각한 가상의 공간이다. 봉우리의 높이는 잠재적 행복의 크기, 계곡의 깊이는 잠재적 고통의 크기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사고와 행동, 관습, 윤리 규정 등은 다 그것이 가져오는 행복과 불행에 따라 도덕의 풍경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는 "좋은 삶의 방식은 다양해서 도덕의 풍경에 여러 봉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봉우리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 믿음, 종교, 철학과 사회의 모든 면을 과연 과학이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 역시 '뇌과학적 접근만으로 온전히 인간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근거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도 그렇다. 뇌과학적 방법론에는 아직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향후 뇌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증가해도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을 물질적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다가는 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러한 논쟁의 끝이 아닌 시발점으로서 분명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 봤다. "나는 과연 적극적인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좀 더 구체적이고 예측하기 쉬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최신 뇌과학 지식을 통해 저자와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최근 대학에서도 하나의 학문에 얽매이지 않는 융합적 사고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술이나 각각의 학문이 탐구의 중심이 아니라 그 목적이 되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의 융합적 추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샘 해리스가 주장하듯, 뇌과학이 여러 학문과의 창조적 융합을 통해 앞으로 각 개인뿐 아니라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데 최대한 기여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