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22 22:34
연이은 '人事 낙마'… 경제는 실종… 10大 그룹 쌓아둔 돈만 105조원
경제 관료 인사에도 싸늘한 시선 '경제 민주화'
'복지공약'은 강행
나라 경제 잘 돌아가려면 민간 투자 끌어내고 일자리 늘려야
송희영 논설주간

앞뒤 가리지 않고 태양광·전지(電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뒤탈 나버린 기업도 적지 않다. 그런 씁쓸했던 추억마저 아쉽다고 말하는 기업인들이 요즘 늘고 있다.
인사(人事)에선 낙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정치학 점수가 훤하게 드러났다. 그런 화제에 파묻혀 실종된 것이 경제다. 불황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있건만 경제는 새 정권의 관심권 밖에서 따돌림당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10대 그룹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105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37조원, 현대자동차 19조원, SK 7조원, 포스코 4조7000억원 등 대기업마다 현찰 더미가 쌓여 있다. 증권거래소가 1644개 상장회사의 내부유보금을 조사한 결과 작년 3분기 현재 832조원에 달했다. 우리 국민이 과거엔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엄청난 여유 자금이다.
그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있는 사연은 제각각이다. 다음번 투자를 위해 잠시 묶어두었다는 회사가 많다. 다른 회사 인수 자금으로 비축하고 있다는 곳도 있다. 새 공장을 짓기보다 여윳돈을 금융 상품에 굴리는 편이 더 낫다고 계산한 사례도 적지 않다. 나라 경제 입장에서 보면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자금은 무덤에 묻힌 '죽은 돈'이다.
경제팀은 곧 10조원의 추경(追更)예산을 편성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한다. 경제 규모(GDP)가 1000조원이 넘는 나라에서 10조원짜리 '경기의 불'을 지펴본들 거대한 용광로를 데울 수나 있을까. 민간 기업들이 묻어둔 832조원 중 10%만 끌어내면 그보다 8배 화력(火力)이 강한 80조원이 넘는 투자 엔진이 가동될 것이다. 정부가 짜낼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지만 민간 부문의 자금 여력을 활용하면 돈이 공장을 낳고 돈이 다시 돈을 낳으며 경기 회복의 불꽃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새 정권은 이런 경기 순환의 상식적 법칙에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정권은 정부의 힘, 공무원의 능력을 과신하는 인상이다. 경제 관료는 죽어가는 경기를 금방 살려낼 재간을 갖춘 집단이라고 믿는지 그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이들이 '마술 피리'를 불며 정부 지출을 늘리고 공기업이 투자를 선도하면 민간 기업들은 피리 소리에 맞춰 뒤따를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경제계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그 사람이 장관이 됐다니 한번 기대해 보자' '그런 인물이 중시하는 성장산업이라면 우리도 따라가 보자'는 반응을 듣기란 좀체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의 쑥덕거림이 널리 퍼지고 있다.
경제부처 장·차관 인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경제 정책에 다시 한 번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창조 경제'라는 애드벌룬은 허공에서 홀로 떠돌고 기업 투자를 자극하는 정책은 들어보기 힘들다. 애당초 정책 방향이 확실했다면 셈이 빠른 기업은 벌써 새 정부 출범 전에 공장 터를 계약하고 사원 채용 광고부터 냈을 것이다.
경제계는 신규 투자에 들뜨기는커녕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막느라 바쁘다. 법원이 비리 기업인에 대한 처벌 형량을 높이는 상황에서 재계는 새 정부가 앞으로 쏘아댈 '경제 민주화'라는 총알이 얼마만큼 파괴력을 가진 무기인지 짐작하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있다. 어차피 닥칠 일이라지만 하필 경기가 가라앉는 시기에 재벌 때리기가 추진되고 있다. 기업들은 언제 허리를 펴고 일어서야 할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번 정권은 지금껏 집권 5년 동안의 경제성장 목표를 내놓지 않았다. 실무자들은 올해 성장률을 3%로 잡고 경제 운용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3%라면 이명박 정부 5년 평균 성장률 2.9%와 다를 게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 살아보세'를 노래 불러도 '경제 회복'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그런데도 복지만큼은 가장 먼저, 그리고 꼼꼼히 챙긴다. 복지 공약은 후퇴가 없다고 대못을 박았다. 어르신들은 정부가 매달 20만원씩 노령연금을 주는 것보다는 직장에 취직한 손주가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네 겹으로 접어 손에 쥐여주는 쪽을 더 뿌듯하게 생각할 것이다. 연금은 못 받아도 자녀가 취직하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서민들의 경기 감각이다. 새 정부 사람들은 이런 간단한 우선순위를 잊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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