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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박두식 칼럼] 우리는 북한 문제의 당사자가 될 자격 있는가

[박두식 칼럼] 우리는 북한 문제의 당사자가 될 자격 있는가

  • 박두식 논설위원

    입력 : 2013.03.19 22:39

    북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은 미국의 관심을 붙잡는 데 성공
    미국·북한·중국이 이끄는 북핵 협상 가능성 커져
    우리는 또다시 무대 주변으로 밀려날지 모르는 처지

    박두식 논설위원

    지난 석 달여에 걸친 북한의 도발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북한이 그토록 원했던 미국의 관심을 끌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한동안 북한을 잊은 듯했던 미국 정부가 요즘 들어 연일 북한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북한이 미국 외교정책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북한의 핵 탑재 미사일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쓸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 2월 세 번째 핵실험을 실시했다. 한·미 전문가들은 북의 핵·미사일이 아직은 미국을 직접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실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로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현재 미국 조야(朝野)는 북한발(發) 악몽의 순간이 멀지 않았으니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GBI(지상발사요격미사일) 14기(基)를 미국 서부 해안에 추가 배치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조치다. 미국은 요즘 재정(財政) 지출 삭감을 놓고 행정부와 의회가 정면 충돌하면서 하루살이 식으로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타격을 받는 분야가 국방 예산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조치만큼은 예외로 둘 만큼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미국 서해안에는 이미 GBI 30기가 배치돼 있다. 반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든 우리의 영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수백 기와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에 북한의 위협은 미래형이라면 우리에겐 당장의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대응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미국이 훨씬 더 절박하고 긴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오바마의 재선 성공 직후부터 석 달여에 걸쳐 핵·미사일 도발을 벌였고, 이를 통해 미국을 다시 '북핵 무대'로 불러들였다. 그전까지 오바마는 북한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미국 측 표현을 빌리면 '전략적 인내'다. 전략적 인내는 대북 압박에 무게를 뒀던 이명박 정부와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엄밀히 따지면 지난 4년간 북한 문제는 다른 현안들에 밀려 오바마의 관심 밖에 있었다.

    미국 백악관은 엊그제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미국 내에서 비판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조만간 북한 문제에서 큰 틀의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북한 관련 논의조차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국가적 사안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는 지난해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백악관과 국가정보국 관리들을 비밀리에 북한에 보냈었다. 이들은 미군 군용기를 타고 괌에서 출발해 서해 항로를 통해 평양에 들어갔다. 우리 정부에서 이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밀 방북 사실도 극소수의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그 직전에 통보해 왔을 뿐이라고 한다. 당시 방북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이 걸린 작년 선거 기간 중 북한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당부하고 북한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다. 훗날 나온 북한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은 우리에게 조선 적대시 정책은 없다고 했다"고 한다. 미국은 자신의 국가적·정치적 이해가 걸리면 언제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나라다. 그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20년 넘게 진행돼 온 북핵 문제는 미·북을 축으로 움직여온 기본 틀에서 점점 중국의 역할이 늘고 있는 국면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주변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늘 북한 문제의 제1 당사자가 한국이고, 다른 나라들도 이것을 인정해주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북한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해 온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받아들여질지 의문스럽다. 새 정부가 내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지금의 복합적인 상황을 풀어갈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