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교황

266代 교황 프란치스코] 원고없이 연설… "세속가치 앞세우면 우린 예수제자 아니다"

[266代 교황 프란치스코] 원고없이 연설… "세속가치 앞세우면 우린 예수제자 아니다"

  • 바티칸시티=이성훈 특파원

    입력 : 2013.03.16 02:59

    교황 프란치스코 즉위 첫날… 격식 깬 소탈한 모습 보여
    일반인 잘모르는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語로 첫 미사… "신앙심없다면 우린 NGO에 불과"

    14일 오전 8시쯤(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중앙역 근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일반 검은색 중형차에서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내렸다. 방탄 기능이 있는 교황 전용 대형 세단이 아니었다. 성당 측은 교황을 맞이할 별도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교황이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10분 전에야 방문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교황은 제단에 소박한 꽃다발을 올린 후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 성모상 앞에서 기도했다. 이 성당의 루도비코 메로 신부는 "우리에게는 마치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고 말했다.

    직접 짐 챙겨 호텔 체크아웃…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오른쪽)가 15일 바티칸이 운영하는 호텔에 들러 직접 체크아웃하고 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콘클라베 기간 동안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이 호텔에서 묵었다.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이곳에 들러 직접 자신의 짐을 챙기고 숙박비를 계산했다. /로이터 뉴시스
    이전 교황과 비교할 때 교황 프란치스코의 첫날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교황은 성당을 나와서 어린이들과 함께 인근 학교 운동장을 방문했다. 이후 바티칸으로 돌아오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투표 회의) 전까지 머물렀던 호텔 '바오로 6세의 집'에 들러 짐을 찾고 숙박비도 직접 계산했다. 호텔 직원은 "하룻밤 숙박료는 85유로(12만3000원)"라며 "교황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고 말했다. 바티칸 대변인은 "교황은 사제와 주교들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모범을 보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파격은 이미 예견됐었다. 지난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바티칸 내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올 때도 다른 추기경과 함께 버스를 이용했다. 미국의 티머시 돌런 추기경은 "버스가 출발하려다 멈췄을 때, 우리 중 누군가 내리는 줄 알았는데 교황이 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12만명의 군중 앞에 첫 모습을 드러낼 때도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 모제타(고위 성직자 위한 짧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가톨릭 전문 매체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는 "교황은 별도 제작한 새 십자가도 거부하고, 주교 시절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착용했다"고 보도했다.

    14일 추기경단과의 첫 미사를 집전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원고 없이 약 10분간 이탈리아어로 즉석에서 설교했다. 바티칸 내에서는 대부분의 미사를 라틴어로 진행한다. 그가 이탈리아어로 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첫 미사 때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라틴어로 된 3페이지짜리 원고를 읽은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비교해 그의 친근함을 부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 타고 숙소로… 교황 프란치스코(앞에서 둘째 좌석 붉은색 점선으로 표시된 이)가 13일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숙소로 돌아가면서 전용차 대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소형 버스에 탑승해 있다. 예수회 소속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해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페이스북
    교황 프란치스코는 설교에서 "우리는 원하는 대로 걸을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지을 수도 있지만, 신앙 없이는 인심 좋은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속적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교황·추기경·주교·사제일 수는 있지만,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며 "세속적 가치로 어떤 일을 이루려 한다면 어린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미사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단출한 노란색 예복을 입었다. AP통신은 교황이 형식의 파격을 통해 오래된 전통과 격식을 없앴다며 전임 베네딕토 16세의 과시적 형식을 거부할 것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보도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15일 오전 자신을 뽑아 준 추기경단을 다시 접견했다. 또 교황청 주요 보직 인선 작업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로마 시내 나보나 광장에서 만난 대학생 아두리니치(21)씨는 "바티칸이 좀 더 친근해져야 한다"며 "새 교황이 교황청 밖에서 시민과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