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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

[조선데스크]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

  • 강훈 사회부 차장

    입력 : 2013.03.15 22:24

    강훈 사회부 차장
    양승태 대법원장이 작년 6월 모교인 경남중·고 출신 국회의원들을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당시 대선 유력 주자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을 포함해 여야 의원 7명이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에 초대됐다.

    공관 만찬은 흔히 일반 가정에서 하는 '집들이'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비서실이 나서서 만찬 참석자의 차량 번호까지 확인해 공관 경비대에게 통보하는 등 영접에서 음식 주문, 배웅까지 여간 품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물론 이 업무는 공무원이 담당하고, 만찬 참석자가 즐기는 음식과 술 역시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다. 대법원은 기자가 만찬에 사용한 경비 내역을 요청하자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 대법원장 측은 공관에서 모임을 가진 데 대해 "밖의 식당에서 하면 모양이 이상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답변도 옹색할 따름이다. 동문 의원들이 밥 먹는 식당에 찾아가 선배로서 기꺼이 한턱 냈다면 그걸 나무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 정도의 인간미는 이해한다.

    양 대법원장이 잊은 게 하나 더 있다.

     

    공관 만찬이 열렸을 때는 총선이 끝나고 대선을 앞둔 시기로 부산 출신 인사들이 들떠 있을 시기였다. 유력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은 경남고, 안철수씨는 부산고 출신으로 '부산 정권'이 들어서리란 기대감이 충만할 때였다. 지역에선 경남고와 부산고가 힘을 합치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고 끝내 문 의원과 안씨는 단일화를 이루기도 했다.


    양 대법원장이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몰랐을까? 그는 후배 판사들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글을 남길 때마다 균형 잡힌 자세를 강조해왔다. 엊그제 열린 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양 대법원장은 "법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부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관 스스로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치권을 향한 법관의 몸가짐은 오비이락(烏飛梨落)조차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으로 보일 정도다.

    그런 양 대법원장이 아무리 동문이라도 정치인들과 대선 유력 주자를 초청해 만찬을 한 것은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한 처신이었다. "나중에 참석자 중 한 사람이라도 선거법에 걸려서 재판을 받게 되고 동문임을 내세우며 선처를 청탁한다면 어떡할 것이냐"는 원로 변호사의 지적은 따끔하다. 그 동문 정치인이 행여 유리한 재판을 받는다면 국민은 법원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단순한 동문 모임이고 정치적 의미가 없다"는 대법원 해명은 그래서 어설퍼 보인다.

    대법원장을 지낸 한 원로 법조인은 "나는 임기 중에 정치인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며 "어떤 이유라도 대법원장이 정치인들을 만난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사법부 독립은 논리적인 명제일 뿐 아니라 형식적·물리적으로도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원로들의 생각이다. 이런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동문 정치인들과 공관 만찬을 한 것은 그래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