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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등산 초보의 좌충우돌 등반기] 등산화 없이 북한산 올랐다가 얼음산에 '어이쿠'

[등산 초보의 좌충우돌 등반기] 등산화 없이 북한산 올랐다가 얼음산에 '어이쿠'

입력 : 2013.03.08 09:25

등산화 없이 북한산 올라, 등산 장비의 필요성 실감해
하산 시 방심은 금물, 등산사고 70%가 하산 시 발생

지난 1일 새벽 5시, 휴일이지만 이른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내고 잠에서 깼다. 3.1절 아침 회사 식구들과 함께 북한산 등반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설악산을 올랐던 이후 성인이 돼서는 처음 가는 등산이라 호기심 반, 걱정 반인 마음을 안고 잠들었더니 선잠을 잤는지 몸이 뻐근하다. 일어나자마자 분주히 준비하고 어머니가 챙겨주신 정성이 가득 든 과일과 간식이 담긴 배낭을 메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등산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기모 바지에 스노우보드복을 걸치고, 등산화 대신 일반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은 등산화가 없어 걱정하셨지만, "뭐 그리 다르겠어" 라는 가벼운 마음이 걱정보다 앞섰던 것 같다.

아침 7시, 북한산 등반을 위해 약속한 사람들과 북한산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만났다. 함께 산을 오르기로 한 동료는 내 운동화를 보고 "바닥이 미끄러워 올라갈 수 있겠느냐"며 걱정했다. 아직 눈이 완전히 녹지 않은 '물 반 얼음 반' 간절기 산행이라 길이 매우 미끄러울 거라며 방심하지 말고 걸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를 향해…

드디어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목적지는 북한산 주봉이자 최고봉인 '백운대'였다. 높이 836m인 백운대까지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처음부터 머릿속이 깜깜했다. 하지만 초입은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어서 담소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 안에서 호흡할 수 있는 등산이 제법 매력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행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돌계단이 나오고 경사가 가팔라지자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동료가 자신의 스틱을 나에게 넘겨 주었다. 그 동료는 "스틱을 사용해 오르면 체중이 분산되어 체력 소모가 덜하다"고 말했다. 급경사 지대가 많고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길이 계속되자 운동화를 신은 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허리 정도 높이까지 스틱 길이를 조정하고 손잡이에 달린 줄에 손목을 고정한 후 "너만 믿는다"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힘껏 쥐었다.

같이 온 동료는 평소 일주일에 한 번은 산을 오르는지라 등산 장비도 전부 갖추고 있었고, 산을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등산은 가장 느린 사람한테 맞추는 거라며 속도가 가장 느린 나에게 맞추면서 올라갔다. 한 명이 앞에서 앞서고 다른 한 명은 뒤에서 백업해 주어 첫 산행이지만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리딩을 맡은 동료는 내 가방 밑을 살짝 들어보더니 짐을 나눠 들자고 제안했다. 별로 무겁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것도 체력 소모가 크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사람들에게 가져온 물건을 하나씩 건넸다. 가벼워진 배낭과 스틱을 손에 쥐고 있으니 지금부터는 잘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괜한 자신감이 들었다.

◆등산화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겨우내 내렸던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아 곳곳에 얼음판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자꾸 미끄러지자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겁이 났다. 특히 정상까지 1km 정도 남았을 때부터 어머니가 건네주신 등산화가 크다며 신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접지력이 떨어지는 운동화는 자꾸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난간에 있는 줄을 잡고 올라가자 팔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먼저 디뎌야 하는데 미끄러져 산 밑으로 데굴데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발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팔힘으로 줄을 잡고 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번 두 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니 산이 무서워졌다. 그냥 포기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산은 화강암 풍화로 형성된 지형이어서 험한 암벽이 많아 등산 초보자는 산이 익숙한 동행자가 없다면 오르기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밑에 덧신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가도 힘든 여정인데 일반 운동화를 신고 돌산을 올랐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상고대와 국립공원의 위엄있는 자태

위문을 지나 성곽 길을 따라 걷고 철계단을 올라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오르자마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강한 바람이 불어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땅만 보고 산에 올라갈 때는 땀이 나서 추운지 몰랐는데 정상에 오르니 땀이 식고 강한 바람이 불어 체온이 떨어졌다. 등산 전날 동료가 "면 종류 옷은 입지 말고 얇은 옷 여러 개를 겹쳐 입어라"고 조언했던 이유가 이해가 됐다. 같이 간 다른 동료는 면 폴라티에 두꺼운 점퍼를 입고 와서 옷 부피 때문에 고생 좀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산 밑을 내려다봤을 때는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탁 트인 시야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북쪽에 보이는 인수봉과 남쪽의 만경대의 웅장한 자태에 감탄했다. 나무 위에 서린 상고대도 볼 여유가 생기고, 어린애처럼 "야호"하고 소리도 지르고 싶었으나 창피한 마음에 속으로 자신에게만 조용히 외쳤다.

넓디넓은 정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동료가 아침에 손수 만든 김밥을 먹었다. 너무 힘들어서 입맛이 없었지만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열심히 먹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른 아침에 서둘러 나와 일행 중 아무도 따뜻한 물을 싸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옆에서 컵라면을 먹는 등산객이 얼마나 부럽던지…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이 이렇게 간절하기는 처음이었다.

◆하산 시 방심은 금물!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하산하기로 했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올라왔던 것 보다 내려가는 길은 날개 달린 것처럼 재빨리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힘들게 올라오느라 체력을 소비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내려가는 길이 천리만리 같았다. 거기에 잠시라도 방심하면 휙 하고 미끄러졌다. 왜 등산 사고 중 70%가 하산할 때 생기는 것인지 실감이 났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안 보이는 길을 보며 "정말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을까?" 하는 푸념 섞인 생각과 함께 빨리 내려가고 싶은 조바심이 났다. 거기에 무릎과 발목은 왜 이리 아픈지. 밑창이 얇은 운동화를 신었으니 발바닥에 주어지는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나가시던 부모님 나이대의 등산객들은 "그 신발로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다 왔느냐"며 핀잔 섞인 걱정 한마디를 던졌다. 아마 힘들게 올라가 고생했을 것이 눈에 선한가 보다.

그렇게 3분이 30분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평평한 등산로 초입 길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밑에 땅만 보느라 고개가 아팠는데 지금쯤 기지개를 한번 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와서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닭볶음탕으로 허기를 채우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 후 무엇보다도 "등산화 없이는 다시 산에 오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절기 산행이 왜 위험한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고, 말로만 듣던 등산 장비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등산할 때는 올라갈 때보다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해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 나 같은 등산 초보자라면 다른 건 몰라도 등산화는 꼭 신고 가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