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경청', 쉰 살 많은 처칠을 사로잡다
입력 : 2013.03.02 03:04
[인생을 읽다-엘리자베스 2세]
처칠 등 많은 지도자들 여왕의 대화법에 반해
2015년 9월이 되면 최장수 재위
기록
퀸 엘리자베스
샐리 베덜 스미스 지음|정진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784쪽|3만5000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87)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민을 거느린 군주다. 세계 21억 인구, 54개
회원국을 거느린 영연방(The Commonwealth)의 수장이자 6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역 최고 지도자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명목상의 군주이지만, 여왕의 리더십은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의 구심점일 뿐 아니라 영국의 매력과 호감도를 높이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다.
존 F 케네디 부부, 다이애나 왕세자빈 전기를 쓴 작가 샐리 베덜 스미스는 6개월간 250명이 넘는 엘리자베스 2세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여왕과 찰스 왕자를 직접 취재하는 '특권'을 누리며 전기를 썼다. 스미스는 스물여섯, 젊은 엄마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가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비결을 추적한다.
엘리자베스가 국왕으로서 처음 상대한 정치가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여왕은 매주
화요일 저녁 버킹엄 궁에서 총리와 면담을 가졌는데, 50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기투합했다. 위스키와 소다를 마시며 나누는 30분 정도의
환담 자리는 20대 여왕이 세계정세와 국정(國政)을 익히는 교실이었다. 여왕은 처칠의 지혜와 달변을 흠모했고, 처칠은 고집스러웠지만 여왕의
숭배자였다.
◇경청…노련한 정치가
여왕은 상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는 경청가였다. 처칠
후임 총리 맥밀런은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고 했다. 가끔 맥밀런을 대신해 여왕을 만난 보좌관
버틀러는 엘리자베스 2세를 이렇게 평했다. "그녀는 한 번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대화 중에 자기 의견을
일찌감치 내놓는 법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의견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경청한다."
- 1981년 런던에서 말을 타고 군기 행렬식에 나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질주하기를 즐겼다. /RHK 제공
여왕은 총리와의 면담이 잡담이나 나누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상대를 '교육'시켰다. 엘리자베스 2세 재임기 다섯 번째 총리였던 노동당 당수
윌슨을 처음 만났을 때, 파운드화(貨)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묻고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지적했다. 윌슨은 난처해했으며 훗날 후임자에게
"모든 전문과 내각 회의 문서를 꼼꼼히 읽고 가지 않으면 예습 안 한 학생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급 외교관,
엘리자베스 2세
맥밀런 총리는 1961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 부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왕을 동원, 사흘간의 국빈 방문을
실현시켰다. 영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유럽 공동 시장에 참여하려 했으나 드골이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국빈 방문 대상 국가를
선택하지만, 초대는 여왕만이 할 수 있었다. 드골은 버킹엄 궁의 호화 숙소에서 묵으며 여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여했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드골도
훗날 "엘리자베스 2세는 모든 것에 대해 정통했다. 사람과 사건에 대한 그녀의 판단은 분명하고 사려 깊었으며 그 어떤 사람보다도 폭풍이 몰아치는
우리 시대의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더 집착했다"고 썼다.
◇필립 공과의 만남, 결혼
다섯 살 연상인 남편 필립 공(公)을 찍은 것은 엘리자베스 2세였다. 아버지 조지
6세(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가 열셋이던 딸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해군사관학교를 찾았을 때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스무 살이던
1946년 청혼을 받자마자 부모와 상의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승낙할 만큼, 필립에게 빠졌다. 몰락한 그리스 왕자 출신인 필립을, 왕실
주변에선 경계했다. 1952년 엘리자베스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남편 필립 가문 이름인 마운트배튼이 아니라 여왕의 아버지 윈저 가문을 이어받자
필립은 폭발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내 이름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다" "나는 한심한 아메바 같은
존재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케네디, 흐루시초프, 고르바초프 같은 세계 지도자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엘리자베스 2세는 60년 넘게 여전히 최고 권좌에 있다. 2015년 9월이면 영국 역사상 최장수 재위 기록(63년 216일)인 빅토리아 여왕까지
뛰어넘는다. 영국 왕실의 공식 전기답게 객관적 평가보다는 여왕에 대한 미화가 많다. 하지만 처칠, 맥밀란, 히스, 캘러헌부터 대처, 메이저,
블레어, 캐머런에 이르기까지 열두 명의 총리를 상대한 엘리자베스 2세의 정치력과 그들에 대한 평가는 흥미롭다. 무엇보다 소탈하면서도 강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인간적 매력이 책을 펼치게 만드는 강력한 흡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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