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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한한 힘/남과 여자 차이

여자의 소비심리와 연애는 닮은 꼴이다

여자의 소비심리와 연애는 닮은 꼴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오빠! 지금 쓰는 게 너무 오래돼서 그러는데, 저 디카 하나 사주면 안돼요?"

요즘 같은 야박한 경기에, 디카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했고, 혹시 미리 봐 놓은 모델이라도 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이번에 SON* 에서 나온 하얀색 디카욧!"

그로부터 며칠 후. 지인을 만나기 위해 코엑스에 갔다가 SON* 매장에 들려 디카를 하나 샀다.
흰색 케이스에 천만 화소 짜리 디카였는데, 이쁘장하니 한 손에 딱 들어가는 것이 그녀 마음에도 들겠지 하며 골랐다. 하지만 왠 걸. 제품을 뜯어보자마자 그녀는 대뜸 나에게 소리부터 지르는 것이 아닌가?

"오빠, 내가 말한 건 이게 아냐! 요즘 손예진이 광고하는 거 있잖아. 내가 갖고 싶은 디카는 그거란 말야!"

약 5분간 욕을 먹다가 매장에 전화를 걸어 제품 문의를 해 보니, 그녀가 말하는 소위 '손예진 카메라'는 렌즈 교환식의 DSLR급 미러리스 기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점심 때 먹은 파스타 따위를 찍어 SNS에 올리는 그녀에게 DSLR급 카메라는 불필요한 과소비로 느껴졌다. 내가 더 콤팩트한 디카를 구입한 이유는 몇 십 만원의 추가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무게도 가볍고 크기도 작아 들고 다니기 편한 점 등 본인에게 더 적합하고 효율적인 제품을 선물한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제품의 성능이나 활용도를 고려하기 앞서 다만 TV 광고에 나왔다는 사실. 그래서 남들이 '알아보는' 제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제품이 자신에게 알맞은지에 대한 판단 보다는 친구들이 '와 ~' 할 만한 신상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다. 나와 통화한 SON* 직원에 의하면, 손예진씨가 카메라 광고에 들고 나온 모델이 흰색이었기 때문에, 흰색과 다른 색상의 판매 비율이 9:1이란다.

끝내 기업들이 엄청난 자원을 마케팅에 퍼붓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실제로 TV 속 광고라든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판촉 등, 요즘 기업 유통 프로모션의 주 대상은 여성이다. 그만큼 제품의 '사회적 인지도'는 여성 소비의 핵심적인 고려사항이며, 종종 그녀들의 소비 형태를 들여다보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가 즐비하다.

내 어머니부터 지금의 아내까지, 한평생 나는 수많은 여성들의 소비를 지켜봐 왔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들의 소비 패턴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설득 보다는 반품이 쉽다.


그녀의 디카를 ‘손예진 카메라’로 바꿔 주고 나서 얼마 후, 오랜만에 기분 전환도 할 겸, 나는 그녀와 함께 재래시장에 갔다. 그녀는 어느새 디카를 또 들고 나와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댄다. ‘아마도 내 눈치 보느라 더 좋아하는 척이겠지, 실컷 가지고 놀다가 금새 어딘가에 처박아 둘 거면서...’ 라고 생각하며 시장을 보는데,

"에이 아줌마도 참! 너무 비싸다, 천원만 깎아줘요!"

며칠 전 버럭버럭 우겨서 받은 백만 원짜리 디카를 목에 걸고, 재래시장에서 야채 값 천원을 깎으려 목청껏 흥정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다.


글, 사진 제공 / 여우지 (http://www.yeowooj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