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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태평로] 다시 '下厚上薄 사회'로 가자

[태평로] 다시 '下厚上薄 사회'로 가자

  • 윤영신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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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2.07 22:45

    대학 졸업 청년층 기다리는 건 백수, 어렵게 취직해도 사원 월급 '쥐꼬리'
    저출산 악화되고 국가 老化 재촉… 20~30대야말로 더 많은 복지 필요

    윤영신 사회정책부장

    떡볶이집·김밥집·커피숍 등을 운영하는 20·30대가 부쩍 늘었다.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했던 돈벌이에 젊은이들이 가세한 것이다. 혼자 힘으로 가게를 차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취업을 포기하고 부모 돈으로 자영업에 나선 젊은이들이다.

    종잣돈을 대주는 부모를 둔 젊은이들은 김밥을 말고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일자리라도 있어 나은 편이다. 21세기 한국의 20대처럼 절망의 벼랑에 선 젊은이들이 또 있을까. 재수·삼수해서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필수'가 됐고, 대학 가서도 해외연수니 인턴이니 스펙 쌓기를 위해 1~2년 휴학하는 것이 기본이다. 남자들은 군 복무 기간까지 합하면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까지 8~10년의 세월을 보낸다.

    20대를 이렇게 지내고 대학 문을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일터가 아니라 백수 생활이다. 부모 밑에서 눈칫밥 먹으며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30세가 훌쩍 넘지만 부모 품을 떠나 자립할 길이 없다. 요즘 중년들 사이에서 나오는 푸념이 있다. "아이 낳아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 쓰는 돈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시키고 결혼시키고 그 후에도 뒷바라지하는 데 드는 돈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가 수퍼 호황을 누리고 주주(株主)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회사는 부자(富者)가 됐는데 직원은 가난해지는 현상이 생겼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회사가 돈을 벌면 주주들이 배당으로 가져갔다. CEO들은 주주들이 가져갈 몫을 극대화하려고 대량 해고를 감행하고 정규직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돌렸다.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뛰는 임원과 고위 간부들이 두둑한 연봉을 받은 반면, 그 아래 직원들은 그들의 연봉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재산 모으기가 힘들어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사원과 하급 간부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월급봉투를 두툼하게 해줬던 것이 한국 기업의 하후상박(下厚上薄) 전통이었다. 이런 관행이 점차 사라지면서 일부 대기업 직원을 제외한 보통 직장인의 삶은 초라해지고 많은 이가 중산층에서 탈락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02년 25~29세의 평균 월급은 126만원이었다. 당시 가장 월급이 많았던 40~44세(183만원)의 69% 수준이었다. 이것이 2008년 65% 선으로 떨어졌다. 임원급 월급이 37% 뛰는 사이 사원들 월급은 29% 올랐다. 취직 못한 수백만의 청년 백수와 폭증한 비정규직까지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하후상박'에서 '상후하박'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박(下薄)의 사회에선 희망을 찾기 힘들다.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늦추고, 가정을 만든 뒤에도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은 무엇보다 얇은 지갑 때문이다. 하박은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키고, 나라의 노화(老化)를 재촉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보수 세력치고는 꽤 파격적인 복지 공약들을 내놓았다. 0세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를 껴안는 맞춤형 복지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대한 복지 비용이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등에 산발적으로 뿌려지는 것은 단순한 구휼적(救恤的) 복지에 치우칠 수 있다.

    '박근혜 복지'가 나라의 앞날을 대비하는 전략이 담긴 복지로 성공하려면 정책의 무게를 20~30대에 더 많이 실어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일자리를 얻고 재산을 형성하고 제때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고령사회의 재앙'을 막을 수 있다. 하후상박 사회가 되면 젊은 층이 튼실해져 노인 세대를 부양할 것이다. 기업들 역시 고용과 임금에서 하후상박의 복원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이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