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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족

범행 1주일 전 원룸서 연탄가스 모의실험

①범행 1주일 전 원룸서 연탄가스 모의실험

  • 전주=김창곤 기자

    입력 : 2013.02.04 03:07

    '전주 일가족 셋 연탄가스 살해' 범인은 둘째 아들… '범죄 드라마' 뺨치는 교묘한 수법
    ②형 범행으로 위장하려 "행복해라" 형 애인에 메시지
    ③아버지 회사 직원에게도 "내일 출근 안한다" 연락
    ④한달 전에도 범행 시도… 이번엔 태연히 상주 노릇

    지난달 30일 발생한 전북 전주시 송천동 아파트 일가족 3명의 연탄가스 중독 사망 사건은 혼자 생존한 둘째 아들 박모(24)씨가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범행 1주일 전쯤 화덕과 연탄을 구입, 자신의 원룸에서 연탄을 피우며 모의실험까지 했고, 형(26)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연탄 일부를 형의 승용차에 옮겨두기도 했다. 박씨는 "가정 불화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반 자살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주 덕진경찰서는 가족 재산을 노린 범행일 수 있다고 보고 동기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3일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형에게 뒤집어씌워

    사건 당일 박씨는 119에 신고한 뒤 "새벽에 형이 불러내 캔맥주를 마신 뒤 돌아와 형이 준 우유를 마시고 곯아떨어졌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의 싼타페 승용차 바닥과 슬리퍼에 연탄가루가 남아 있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추궁, 3일 오전 범행을 자백받았다.

    조사 결과 박씨는 사건 당일 오전 1시쯤 아버지(51)·어머니(54)에게, 오전 5시쯤 형에게 각각 수면제를 탄 음료와 우유를 마시게 한 뒤 미리 다용도실로 가져와 불을 붙여둔 화덕을 작은 방과 안방으로 옮겼다. 박씨는 "나 역시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먹었으나 잠들지 못해 연탄가스로 힘이 들었다. 나는 나중에 죽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범인 박씨의 혈액에서도 일산화탄소와 수면제가 검출됐다고 통보받았다. 박씨는 범행을 형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남은 연탄과 번개탄을 형의 승용차 뒷좌석에 옮겨놓고 오전 11시 38분 119에 신고했다.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가 범행 당일 오전 6시 37분에 형의 스마트폰으로 형의 애인과 친구들에게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 그 시각 형은 오전 5시쯤 용의자가 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전북지방경찰청 제공
    1주일 전부터 범행 준비

    박씨는 범행 1주일 전쯤 화덕 2개와 번개탄·연탄 10여장, 연탄집게를 구입했고 두 차례 병원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수면제를 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박씨는 자신이 3개월 전쯤 세들었던 원룸에서 미리 연탄을 피워보기도 했다. 안방·작은방 등 구조가 아파트와 비슷한 이 원룸에서 연탄불을 붙이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실험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씨는 범행 당일 부모가 잠들자 아버지가 경영하는 콩나물 공장 직원에게 아버지 휴대전화로 '내일 출근하지 말라. 나도 안 나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 형이 잠든 뒤 형의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형의 애인과 친구들에게 '행복해라''잘들 지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씨는 남은 연탄을 형의 차량에 옮기면서 형의 옷까지 입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8일에도 도시가스 보일러 배관을 잘라 부모를 질식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이때 부모가 정신을 되찾자 119에 신고했고 자신도 약한 가스 중독으로 다음 날 치료를 받았다.

    태연하게 상주(喪主) 노릇

    박씨는 범행 자백 후 "부모가 사기당한 뒤 불화가 심했고, 형 역시 떡갈비 가게 영업 부진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다 같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박씨가 동반 자살을 계획했다고 하면서도 문자메시지를 조작하고 범행을 떠넘기려 한 점 등에 주목, 이 진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씨 부모가 견실히 콩나물 공장을 경영해왔고, 최근 땅도 보러 다녔다"는 주변 진술에 따라 재산을 노린 범행인지 캐고 있다. 경찰은 가족의 재산 내역과 생명보험 가입 여부를 금융감독원에 조회 중이다.

    박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퇴원, 1일 가족 장례를 치르며 때로 울먹이면서 태연히 상주(喪主) 역할을 했다. 박씨는 범행 자백 후 경찰에 "형(刑)은 얼마나 받느냐", "사실을 말하면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느냐"는 등 질문도 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박씨는 경찰의 추궁에 한참씩 생각한 뒤 지능적으로 답하면서 "부모의 대우가 형에 비해 소홀했다" "맘이 편해지면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4년제 대학에서 2학년 재학 중 군에 입대, 작년 1월 복무를 마친 뒤 콩나물 공장 일을 도와온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