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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건강

[기고] 2013년은 '디지털 헬스'의 원년

[기고] 2013년은 '디지털 헬스'의 원년

  • 이수영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 뇌과학연구센터 소장

  • 입력 : 2013.01.15 09:45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3년 국제가전쇼(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장관이었다. 전 세계에서 15만명이 모여들었다. 모두 2만 개의 새로운 가전제품이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세계 굴지의 대기업 부사장과 중소기업 사장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내 눈길을 끈 것은 디지털 헬스 정상회의(Digital Health Summit)였다. 참석자들은 “2013년은 디지털 헬스의 원년”이라며 “현재 디지털 헬스는 1980년대의 개인컴퓨터(PC)에 비길 만하다”고들 했다. 전시장에는 많은 회사들이 디지털헬스를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디지털 헬스는 정보기술(IT)를 이용해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술이다. 다양한 생체 정보를 측정한 후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로 보내고, 서버에서는 이를 처리해 필요한 경우 의사와 환자에게 연락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한다. 현재 측정할 수 있는 것들은 혈압, 당뇨, 맥박수, 운동량, 스트레스, 뇌파 등인데, 센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 범위는 나날이 확장되는 추세다.

    서버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자료가 모이게 되고, 이를 분석함으로서 새로운 의료 지식도 발견되고 축적된다. 의사는 서버가 제공하는 측정 자료와 잘 정리된 분석 자료를 ‘개인화된 진료’에 참고할 수 있고, 환자는 건강 상태 및 진전 여부를 파악해 스스로 알아서 대처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디지털 헬스는 특히 만성 질환의 진료에 효과적이다. 고령자나 위험 인자를 갖는 사람까지 수혜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조기 진단 및 치료에 따라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8억 명의 만성병 환자가 있고, 의료비의 84%가 만성 질환 진료에 사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선진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현재 6억 명에 이르는 고령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고령자는 병원을 빈번하게 드나들게 되지만, 의사는 쏟아지는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그 결과 1인당 진료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고, 늘어나는 고령 환자의 수요에 의료진이 진료 시간을 늘리는 데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일반 임상 의사가 이런 기술적 진보를 따라가는 데는 그 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헬스는 의사에게 환자 개개인의 의료 자료를 분석해 제공함으로서, 짧은 진료 시간에도 환자를 정확히 진료하는데 필요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디지털 헬스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로는 센서기술, 네트워크 기반, 방대한 자료 분석 기술, 그리고 의료계와 정부의 협조가 요구된다. 언제 어디서나 생체 정보를 큰 불편 없이 측정하는 센서 기술은 현재 일부 생체신호에 한해 이미 존재한다.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생체신호로 발전할 것이다.

    펜티엄으로 컴퓨터 중앙연산장치(CPU) 시장의 대부분을 독과점하는 인텔 조차 ‘미래 센서’를 회사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선통신의 발전 덕분에 네트워크는 현재 기반이 제일 잘 갖춰진 요소다. 이미 2010년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수가 개인컴퓨터(PC) 수를 능가한 상태다.

    ‘방대한 자료’를 뜻하는 ‘빅 데이터(big data)’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추출하는 학습 기술은 이미 현대 과학기술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여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 이제 이 결과를 디지털헬스 자료에 적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료계와 정부의 협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 당뇨나 혈압의 측정을 환자 개인이 하는 등 디지털 헬스의 초기 기반은 구축된 상태다. 현재 디지털 헬스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거대한 성과를 이루는 단계인 ‘극적인 변화의 시작점(tipping point)’에 와 있다. 무선통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월컴이 천만불(약 100억원)의 상금으로 건강관리 혁신 기술을 공모 중이며, 기존의 다른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헬스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벤처기업을 만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네트워크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고 세계 선두 수준의 정보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디지털 헬스에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등에서 보듯이, 5년 전에 세계를 선두했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빛을 잃는 정보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자만하고 있을 수 없다.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은 물론, 차세대 국가 산업 발전의 핵심 분야로 디지털 헬스를 각별히 육성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