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12 03:07
'무명의 부천필' 한국의 3대 오케스트라로 키운 마법의 손
1년만에 세상 놀라게 해
시민회관 복도 전전하며 연습… 이듬해
브람스 교향곡 연주… 관객들 그 사운드에 전율
말러·브루크너 연주 유행시켜
길고 난해한 말러 교향곡… 한번 해보자며 독려해 히트…
이후 다른 악단들도 따라해
역사상 지금처럼 부천에 자랑거리가 많은 적도 없었을 것이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복사골예술제…. 그러나 무엇보다 부천의 큰 자랑거리는 '부천필'이다. 정식 명칭은 부천시립예술단 산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1988년 창단한 이 교향악단은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는다.
연습실 하나 없이 20여명의 단원으로 시작한 이 오케스트라는 급속한 성장을 거쳐 서울시향, KBS교향악단과 함께 '한국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힌다. 그 주역은 단연 1989년부터 24년째 부천필을 이끌어 온 임헌정(60)이다. 32세에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되어 많은 이의 촉망(囑望)을 받던 이 젊은 음악가는 36세에 아무도 관심 없던 부천필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그리고 부천(富川)에서 용(龍)이 나기 시작했다.
임헌정은“지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정신과 육체 에너지가 공연하는 순간 최고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며“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직업”이라고 했다. 다소 구식으로 보이는 헤어스타일은“대학시절부터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 이덕훈 기자

―그런데도 부천필을 맡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에 서울대 음대생들을 데리고 동남아 순회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많은 분과 상의했더니 이제 막 창단한 심포니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보람도 있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국립대 교수니까 사회 공헌도 해야 하고, 또 지휘는 제 연구과제니까 공부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원이 2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면서요.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으로 본 거죠. 이미 단원이 70~80명 차 있으면 맘에 안 든다고 내보낼 수도 없으니까요. 나머지 단원을 내가 뽑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겠다 싶었습니다. 연습실이 없어서 시민회관 전시관에서 연습하고, 복도에서, 로비에서도 연습했어요. 그때만 해도 시민회관에서 연주하면 아이들이 종이비행기 날리고 바닥에 사이다병이 굴러다녔죠. 단원들 모두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인데 '이런 공연을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있었죠. 그때마다 '베푸는 마음으로 하자. 저 아이들이 커서 부천과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것이다'고 다독였습니다."
부천필은 임헌정을 영입하자마자 무섭게 성장했다. 음악계는 실제로 부천필을 '무서워'했다. 부천필의 그토록 뛰어난 소리가 로비나 복도에서 연습한 결과물이니, 제대로 연습실을 갖추면 어마어마한 사운드를 낼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부천필' 앞에는 '공포의'라는 형용이 붙곤 했다.
부천필이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임헌정이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인 1990년이었다. 그해 제2회 교향악 축제에서 부천필은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연주했다. '임헌정의 사운드' 정도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브람스의 사운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괄목(刮目)하지 않고는 상대(相對)할 수 없는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다.
―부천필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팀워크입니다. 연주할 때 서로 신뢰해야 하거든요. 단원끼리의 신뢰, 지휘자와 단원 간의 신뢰, 자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하모니를 내는 것이 오케스트라입니다. '다른 심포니에서 못 들어본 소리를 부천필에서 듣는다'는 칭찬을 받는 것은, 오랫동안 신뢰로 팀워크를 쌓아온 결과예요."
―그 신뢰와 팀워크를 어떻게 구축했습니까.
"우선 인간적으로 서로 좋아합니다. 초창기에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연주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저에게 충고한 것이 '오케스트라는 팀워크다. 사람 잘 뽑으라'는 거였어요. 필라델피아에 기량이 매우 뛰어난 베이스 트롬본 주자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대요. 그 친구 실력이 워낙 좋으니까 시카고 심포니에서 스카우트해 갔습니다. 6개월 만에 전화를 걸어 '도로 데려갈 수 없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만큼 팀워크가 중요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서로 아껴주고 이해해주는 심성이 필요해요. 그리고 음악 할 때는 모든 열정을 바친다는 정신이 있어야죠. 그런 자세로 연주를 하면 굉장한 파워가 생깁니다."
―기량이 좋으면 소리도 좋은 게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음악가들은 연주를 들으면 대번에 알아요. 테크닉은 좋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구나 하는 걸 알죠. 정말 좋은 연주를 듣고 머리를 숙인 경험이 있나요? 그런 음악을 연주할 때는 지휘자나 연주자 모두 눈물이 나요. 작년 말에 학생들과 브람스 3번으로 정기연주회를 했어요. 앙코르 때 3악장만 다시 연주했는데, 불과 10여분 전에 했던 똑같은 곡인데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왔어요. 저도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도 울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음악가가 살아가는 이유예요. 그런 연주를 한 번 듣거나 연주한다면 평생에 남는 경험이 됩니다."
―1999년부터 4년간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해서 '전곡 연주' 유행을 이끌었죠.
"어차피 봉급을 많이 받는 직업이 아니니까 음악적 동기 부여가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했습니다. 말러는 어렵기도 하지만 지휘자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보통 교향곡이 길어야 45분인데, 말러는 1시간30분씩 걸려요. 그래서 연주를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가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 연주예요. 그때 말러 교향곡 2번을 했는데, 그야말로 감격적인 연주였어요.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그때 했죠. 단원들에게 '우리가 음악가로 살면서 평생 말러 전곡은 연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동기 부여를 했어요. 말러를 연주하려면 합창단 포함해서 300명은 있어야 하니까, 예술의전당에서도 처음엔 난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거 안 할 거면 예술의전당 이름 바꾸라'고 반 협박해서 설득했습니다."
부천필이 전곡 연주한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은 이전 한국 무대에서는 매우 듣기 힘든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부천필이 선도한 이후 교향악단들이 앞다투어 말러와 브루크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부천필이 부천의 이미지를 많이 바꿨지요.
"실제로 기업 연구소나 경영학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처음 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에 있는 것이 '고향 만들기'라는 겁니다. 첫 연주회를 했을 때 전임 부천시장들이 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부천은 베드타운이고 정신적인 구심점이 없다. 부천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부천 사람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부천에 잠깐 와 있다'고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천을 고향의 이미지로 가꿔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주곡을 선택할 때도 고향을 테마로 한 곡들을 고르고, 시민들이 부천을 '자랑스러운 고향'으로 생각하게끔 말이죠."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임헌정은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음악을 접했다. 사범학교 출신 초등교사였던 누나에게서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운 게 음악 이력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때 강원 원주로 이사한 그는 원주중학교에서 '피아노 칠 줄 아는 유일한 학생'이란 이유로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때 밴드부 지휘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광고로 진학한 뒤 현악반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종종 지휘를 했다. 이것이 그를 지휘자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네스 음대와 줄리아드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다.
―전공은 작곡을 했는데요.
"지휘자가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첼로는 너무 늦게 시작해서 할 수 없었고, 다른 것은 레슨받을 돈이 없어서 못했어요. 제가 정식 레슨받은 것은 고3 때 딱 4개월 작곡 레슨받은 것밖에 없습니다. 사실 누나 셋 중에 둘이 신학대학을 나와서 저도 신학대를 갈 생각으로 누나들 신학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그때 그 책들이 기독교 문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고, 결국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부천시립교향악단 제공

―좋은 음악을 하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합니까.
"당연합니다. 특히 고전음악은 당대의 미술, 문학, 건축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에요. 인문학을 이해하면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해석이 안 되면 음악가가 아니고 그냥 '쟁이'일 뿐이에요.
말러 교향곡 8번 2부가 파우스트입니다. 그걸 연주하려면 파우스트를 읽어야 하는 거죠. 종교개혁을 모르면 바그너 5번을 연주할 수 없는 것과
똑같아요. 연주자의 인품과 성장배경도 모두 소리로 나타납니다. 그게 바로 장인(匠人)과 테크니션의 차이입니다."
―어떤 성장배경이
현재의 음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전쟁 직후 청주에서 나고 자란 기억이 제 음악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놀 것도 없는, 모든 것이 갖춰진 지금과는 정반대의 삶이었죠. '저 산 너머엔 누가 살까'부터 시작해서 궁금한 게 무척
많았어요. 그런 것이 내 음악에 영감과 상상력, 환상을 불어넣어준 것 같습니다. 동경이란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서구의 오래된 농담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당신에게 총알 두 발이 든 총이 있다고 치자. 당신
앞에 히틀러와 스탈린, 지휘자가 서 있다. 누구를 쏘겠는가?'라고 물었다. 단원이 답했다. '지휘자! 지휘자에게 두 발 다
쏘겠소!'"
―지휘자는 기본적으로 악역이지요.
"말러가 그렇게 악명 높은 지휘자였다고 합니다. 실수한 단원을 일으켜
세워서 연주시키는 식이었다죠. 토스카니니 역시 악명 높아서, 연습실 게시판에 항상 '오늘 맑음' '오늘 흐림' 식으로 써 있었대요. 날씨가
아니라 지휘자의 기분이 그랬다는 거죠.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 늘 심포니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원들을
의사결정에 참여시켜왔지요. 음악적 결정은 제가 할 수밖에 없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고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단원들이니까요. 지휘자는 솔직해야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단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연주할 때마다 100%의 사운드를 낼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모든 구성원의 목표가
동일하고 그 목표를 갖는 과정이 탄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려면 지휘자가 단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기계적인 소리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타악 주자처럼 연주가 뜸한 단원들도 있지요.
"이를테면 3악장까지 심벌이 안 나오다가 4악장에 딱
한 번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심벌이 '촹!' 하고 치면 그렇게 말해요. '저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 악기인 줄 아느냐. 바이올린이 수천수만 번
활을 켜는 사이 딱 한 번 연주하고도 곡을 완성시켜주지 않느냐'고요. 딴 짓 하다가 쾅 치는 심벌과 연주 흐름을 계속 따라오다가 치는 심벌의
소리는 천지 차이입니다. 그런 타악 주자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심벌 한 번 치고 봉급은 똑같이 받잖아요. 하하하."
―늘
뒷모습을 보이는 직업이 서운하지 않습니까.
"제가 원래 숫기 없는 사람이어서 등 돌리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하하하.
저는 음악에 심취한 뒷모습이 앞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지휘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마찬가지일
거예요."
―왜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합니까.
"정신적인 양분이니까요. 사람 몸과 정신이 똑같아요. 단것 너무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리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여자들은 임신했을 때는 태교한다고 모차르트부터 온갖 좋은 음악은 다 듣고, 출산하면 그때부터 절대 안
듣죠.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악만 들으면 정신이 피폐해집니다. 세종대왕도 악(樂)을 바로잡아야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잖습니까."
―클래식이 다른 음악보다 좋은 음악입니까.
"오랫동안 살아남았잖아요. 뭐든지 좋은 것은 오래갑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왕이 비파를 연주해 사람을 치료합니다. 그때부터 음악이 사람을 치료하고 고칠 수 있다고 믿은 거죠. 요즘 세대는 너무 경쟁에
치여 살아서 정신적인 목표가 허물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집니다. 그런 위기에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그래서
악(樂)과 약(藥)은 풀 초(草)자 하나 차이인 것이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은 어떻습니까.
"너무 빠르고
조급하고 쇼킹하고 시끄럽죠. 사회학자가 아니라서 진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나라 전체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진심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음악도 꽹과리 소리가 되는 거예요.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개념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미 모두 대중화가 됐는데 뭘 더 대중화해야 하죠? 아마 외국 심포니 공연을 제외하고는 클래식 공연
티켓이 가장 쌀 겁니다. TV '열린 음악회'가 '클래식을 대중화했다'고 하는 모양인데, 그만큼 클래식 청중을 확보한 건지, '열린 음악회'가
클래식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만든 건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임헌정은 취임 25주년을 맞는 내년 부천필을 떠날 계획이다. 그처럼
오랫동안 한 심포니를 지휘한 사람은 한국에 없었다. 그는 "누구나 헤어지고 만나지만 헤어질 때 아름답기가 참 어려운 것"이라며 "아름답게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연구실을 나와 서울대 정문까지 걷다가 그와 헤어졌다.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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