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08 16:14
[MB 부동산정책 해부]① 보금자리주택의 덫
폭등하는 집값 잡기에 주력했던 참여정부와 달리 침체된 주택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MB정부. 하지만 지난 5년간 수 없이 쏟아진 거래 활성화 대책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만 남겨 놓고 사실상 ‘무장해제’ 수준으로 풀어버린 부동산 규제들은 꺼져가는 시장 온기를 되살리지 못하고 결국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넘겨줬다. MB정부 5년간의 주요 부동산 정책들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시장은 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2008년 9월 이명박 정부는 서민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보금자리주택’이라는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을 시작했다. 정부는 주변 시세보다 15%에서 50%까지 싼 아파트를 2018년까지 서울 외곽에 150만 가구 짓겠다고 발표했고, 서민들은 “지긋지긋한 전·월세 세입자 신세를 면하게 됐다”며 환호했다.
1년 뒤인 2009년 9월,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인 서울 강남·서초 일대에선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인 3.3㎡(1평)당 1000만원대의 아파트가 등장했다. 시장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반값아파트’의 등장에 들끓기 시작하며 이내 ‘로또 아파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불과 몇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박근혜 당선인이 새 정부를 꾸리는 지금, 사실상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정난, 보금자리지구 주변 주민들의 반대, 보금자리주택 인기 하락 등의 이유로 사업 속도도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보금자리주택 대기 수요로 민간 분양시장이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건설사는 공공분양 자체가 시장개입이라며 ‘보금자리 철폐’를 부르짖고 있다. 정부가 땅값이 거의 들지 않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해 값싼 주택을 공급하면서, 민간 아파트가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보금자리주택보다 도심에서 거리가 먼 수도권 2기 신도시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 “처음부터 잘 못 꿴 단추”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공급계획부터 잘못됐다는 비판이 많다. 정부는 정책 발표 당시 수도권의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보금자리주택을 2012년까지 32만 가구를 공급(사업승인 기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09년부터 2011년 말까지 공급된 보금자리주택은 10만2000가구 수준. 고덕강일·과천·오금·신정4지구 등 지난해 예정됐던 공급 물량(약 2만8000가구)이 확정됐다 하더라도 총 사업승인 물량은 13만가구 수준이다.
정부는 공급이 여의치 않자 2011년 6월 ‘수도권 32만가구 공급’의 추진기한을 2012년 말에서 2018년으로 수정했다.
지구지정만 됐지, 사업 진행 상황도 엉망이다. 1만4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경기 하남시 감북지구는 주민들의 지구 지정 취소소송으로 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성남 고등지구(3차·3960가구) 역시 지구계획이 확정됐지만, 현재 지구 지정 취소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2010년 지구 지정이 이뤄진 광명·시흥지구(3차)는 사업계획 변경만 발표한 뒤 이렇다 할 추진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급물량이 당초 계획보다 줄어든 경우도 있다. 5차 보금자리지구인 과천지식정보화타운은 인근 주민들이 “저렴한 주택이 들어오면 재건축 사업 진행이 안 된다”고 반대해 공급물량이 당초 9600가구에서 4800가구로 반토막 났고, 서울 강동구 고덕, 강일3·4 지구도 주민들이 사업 축소를 요구해 보금자리주택 수가 1만2000여 가구에서 1만 가구로 줄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8년까지 150만 가구, 2012년까지 수도권에 32만 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계획된 물량은 공급하지 못하고, 민간 시장만 위축시켰다”며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는데 이미 여러 문제점이 드러난 보금자리가 2018년까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민간 건설사에 손 벌린 정부, 누더기 된 보금자리주택 정책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여의치 않자 지난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민간 보금자리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그린벨트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60~85㎡형 아파트 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분양하고, 민간 건설사가 분양을 진행하는 방식. 예상 공급 물량은 1만8000가구 수준으로 잡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입지여건이 떨어지는 보금자리주택은 미분양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민간 건설사들이 활발하게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참여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주택경기가 워낙 좋지 않은데다, 강남권인 위례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제외하고는 건설사들이 거의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위례신도시와 함께 민간 보금자리 시범지구인 경기 하남 미사지구 민간보금자리사업에 입찰한 건설사는 울트라건설 단 한 곳. 이마저도 경쟁요건 성립이 안돼 재공고에 들어갈 방침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솔직히 강남권 같은 좋은 입지가 아니면 시장 침체기라 아무리 땅값이 싼 곳이라 하더라도 민간 참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강남 인근만 쏠림 현상…타 지역은 미달도 나와
서민에게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보금자리주택 분양의 결과는 ‘강남 쏠림’ 현상이었다. 2009년 서울 강남·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지구의 보금자리주택 1만2900여 가구에 대한 사전예약 접수에서 평균 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막상 본 청약을 진행하자 서울 강남을 빼고 고양 원흥 등에서는 사전 예약자가 대거 이탈했다. 보금자리주택은 분양가가 저렴한 대신 최장 10년간 전매가 제한되는데, 보금자리주택 발표 이후 주택 경기가 침체하면서 강남권 이외의 지역은 가격 매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강남·서초 보금자리는 3.3㎡당 분양가가 1000만원 수준으로 주변 아파트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용면적 84㎡를 기준으로 하면 수억원의 웃돈이 생기는 셈이다. 반면 시흥은계 지구는 3.3㎡당 최고 분양가가 89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주변 시흥시 은행동 아파트 평균 시세가 3.3㎡ 당 756만원으로 떨어지며 오히려 보금자리주택이 더 비싼 상황이 됐다. 부천 옥길지구 보금자리주택 분양가도 3.3㎡당 750만~820만원으로 인근 아파트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은 “보금자리주택이 등장한 이후 민간 분양 시장이 침체되면서 주택 가격 하락 현상이 일어났는데, 보금자리주택이 오히려 인근 시세보다 비싸지는 상황까지 나타나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 새 정부, 보금자리 ‘대수술’ 예고….“약발 설까?”
서민에게 저렴한 주택 제공이란 본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주택 시장 침체의 원흉이란 멍에까지 쓴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새 정부에서 대폭 수정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선거 기간 중 “보금자리주택의 공공분양을 줄이고, 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아직 보상에 들어가지 않은 지구나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 사업계획 변경이 가능한 곳에서는 임대주택 비중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당선인이 서민 주거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철도부지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이른바 ‘행복주택’ 플랜과 더불어, 보금자리주택 정책도 임대주택의 비중을 높이는 등 수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은 “보금자리주택의 분양 기능을 줄이고 임대주택만 짓겠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며 “공급 기한을 늘리고, 연간 목표물량을 줄여 공공분양이 시장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민, 저소득층, 중산층을 구분해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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