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운동/운동

유소년 축구 20년, 바르사 역사를 바꿨다

유소년 축구 20년, 바르사 역사를 바꿨다

  • 바르셀로나(스페인)=장민석 기자
  • 손장훈 기자

  • 입력 : 2013.01.04 23:59

    [한국 축구의 길, 바르셀로나에 있다] [5·끝] 이것만은 배우자
    바르사의 '철학' - 일곱살 때부터 키운 유망주들, 그들이 성장해 한 팀에 모여
    완벽한 조직력으로 '티키타카'축구… 20여년간 일관된 정책 이어가
    한국은 껍데기만 클럽 축구 - 축구 전문지식도 없는 사장·단장 2~3년간 K리그 팀 맡다가 떠나
    고용 불안정한 유소년팀 감독, 당장 이기는 데만 치중… 저학년 선수는 기회 못잡는 현실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주일을 지내는 동안 축구는 늘 곁에 있었다.

    FC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 캄프 누엔 10만명에 육박하는 관중이 들어차 한바탕 축제를 즐겼고, 라 마시아(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의 별칭)에선 수많은 축구 유망주들이 또 다른 메시 탄생을 꿈꾸며 공을 차고 있었다. 가판대에서 집어든 지역 스포츠지는 36면 중 32면이 FC바르셀로나 관련 소식을 담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기념품점에도 온통 바르셀로나 관련 물품들이었다. 축구로 세계를 정복한 바르셀로나에서 관심은 늘 한국 축구의 현실을 향했다.

    한국 축구엔 철학이 없다

    "우리의 철학은…."

    FC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늘 '철학'을 이야기했다.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르셀로나는 지금도 조합원들이 이끌어간다. 1990년대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팀을 지휘하면서 창설된 라 마시아는 20여년 동안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관된 정책과 전술의 흐름이 그들에게는 철학이었다. 산드로 로셀 바르셀로나 회장은 "우리는 앞으로도 라 마시아에서 성장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티키타카 축구를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FC바르셀로나는 유소년 육성과 지역 밀착 정책 등을 꾸준하게 성공적으로 펼쳐내며 K리그 구단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유로 2012 결승전 스페인—이탈리아전에서 한 소년이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을 응원하는 모습. /AFP
    한국 축구의 현실은 다르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는 "한국 프로축구가 30주년을 맞았는데 여전히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는 근시안적 구단 운영을 들었다. K리그에는 축구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장과 단장이 2~3년 동안 팀을 맡다가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앞의 성적에 급급한데 철학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구단 수뇌부나 감독이 교체되면 오랫동안 선수를 관찰하며 팀의 기초를 만들어 가야 하는 유소년팀 지도자도 함께 바뀌는 것도 우리 축구의 한계다. 유럽 명문 구단은 1군 코칭스태프와는 별도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두고 유소년팀을 포함해 구단 전체의 기술적인 수준 관리를 맡긴다.

    학원 축구의 틀을 벗어나자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모델이다. 15~16세가 대상인 카데테 등급까지는 월반(越班) 없이 똑같은 연령의 선수들과 뛸 기회를 준다. 현장에서 유소년 경기를 지켜본 정상훈 숭곡초등학교 감독은 "한국 학원 축구에선 아무래도 체격적으로 불리한 저학년 선수가 기회를 잡기 어렵다"며 "확실한 연령별 구분을 통해 동등한 기회를 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유소년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한국은 여전히 학원 축구의 틀 속에 갇혀 있다. K리그 구단 산하에는 U-12, U-15, U-18 팀이 있지만 따로 클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고 지역 학교를 맡아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학원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고용이 불안정한 유소년팀 지도자는 당장의 성적을 위해 고학년 선수 위주로 이기는 데 치중하고, 저학년 선수는 경기 출전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유럽에선 7~9세의 아이들이 클럽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하다 11~12세 정도에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진로를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출발이 늦은 경우가 많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유소년 부문을 담당하는 김진형 차장은 "우리는 대부분 11~12세에 축구를 시작해 엘리트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축구를 늦게 시작하면 기본기 부족과 함께 진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해야 산다

    바르셀로나에는 FC바르셀로나 외에 에스파뇰이란 팀이 있다. 리그 18위를 달리고 있지만 경기마다 4만여명을 수용하는 경기장 대부분이 홈 팬들로 가득 찬다. 1900년 창단한 이 팀의 팬들은 세계 정상의 바르셀로나보다도 에스파뇰을 더 사랑한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랑하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페레르씨는 "우리도 꾸준히 유소년팀을 육성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르셀로나에 필적하는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홈 구장 캄프 누 관중석에 새겨진 '클럽, 그 이상(MES QUE UN CLUB)'은 사실 유럽 대부분 클럽 팀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다. K리그는 서울과 수원 등 일부 인기 구단을 제외하고는 아직 지역 팬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MLS(메이저리그사커)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이영표(36·밴쿠버)는 "역사가 짧은 북미 구단들은 각종 지역 행사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면서 팬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김종 한양대 체육대학장은 "K리그 구단은 지역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