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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국회)

[아침논단] 민생 정치, 급할수록 돌아가라

[아침논단] 민생 정치, 급할수록 돌아가라

  •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철학

    입력 : 2013.01.02 23:22

    위기 상황서 목적만 고집하면 오히려 상황 악화시킬 수 있어
    우회 통한 간접전략 더 효과적… 불량 일자리 많이 만들기보다
    좋은 일자리 토대에 투자하고 복지 확대도 성장으로 이어져야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철학

    새해에는 민생정부가 들어선다. 민생정부가 새 정부의 이름으로 사용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추구하는 정치적 핵심 가치가 '민생(民生)'이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선 직후에도 삶의 현장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고, 전경련보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는 등 일련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책임지는 민생 정치를 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새 정부와 함께 우리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꿈은 과연 실현될까.

    그런데 민생이라는 말을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 마음은 불안해진다. 민주 사회라면 당연히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할 민생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좋은 삶은 간단하다. 좋은 일자리를 갖고,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미래를 논의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이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이 간단한 목적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면 민생정부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정치적 이념과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목적을 실현하는 전략의 문제다.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복지 및 고용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중산층이 재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조달러 무역 규모로 대외 의존도가 96.9%에 달하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위기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회의 양극화와 노령화 같은 내부적 요인에다 중국의 성장 둔화, 유럽의 위기, 그리고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는 동북아 정치 지형의 변화는 민생 정치의 실현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조건과 실현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목적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때로는 목적을 직접 실현하기보다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목적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적(敵)의 저항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승리하는 방법을 간접 전략이라고 한다. 오늘날 독일이 전략상으로는 가장 먼 우회로가 때때로 최단 경로일 수 있다는 간접 전략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 세계적 위기 한가운데서도 제2의 경제 붐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이런 점에서 민생을 전면에 내세운 박근혜 당선인에게 '간접 전략'을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불량 일자리를 양산(量産)하기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에 투자해야 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 지출의 압박이 심하였을 때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직접적 정책보다는 장기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R&D(연구·개발) 분야에 집중한 독일이 좋은 예이다. 영세 근로자의 생계를 돕기 위한 취로 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 민주화는 통제와 규제보다는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대기업을 때리면 속이 후련할지는 모르지만 일자리가 생겨나진 않는다. 오늘날 독일 경제가 탄탄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독일산(Made in Germany)' 주요 제품 중 많은 것이 강소(强小)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국산(Made in Korea)'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복지사회는 단순한 '지원'보다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지원과 요구'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상 보육, 무상 교육, 반값 등록금은 모두 유혹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국가의 일방적 지원에 길들여졌던 독일 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한 슈뢰더의 개혁 정책이 오늘날의 독일 부흥을 가져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복지 확대 자체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고 동시에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간접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일은 직접적인 것이 간접적인 것보다 선명하고 매력적이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는 간접적인 것이 직접적인 것보다 효과적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한 말이 너무 많고 급박해서 말에 집착하여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소홀할까 걱정이 든다. 때론 "급할수록 돌아가는 길이 곧장 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손자(孫子)의 '우직지계(迂直之計)' 전략을 사용하여 박근혜 당선인의 민생정부가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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