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의 상륜부, 벼락 맞아 400년간 사라졌다 1970년 복원
- 기사
▲ 매년 3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21호·일명 석가탑)이 창건 1270년 만에 전면 해체·복원된다. ▶ 기사 더 자세히 보기
▲ 27일부터 전면 해체·복원에 들어간 석가탑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기단부와 탑신부,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相輪部)다. 상륜부는 조선 선조 때인 1596년 벼락 피해를 입어 대부분 사라졌다가 4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1970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델로 새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1200년 넘는 세월을 건너오며 석가탑이 겪어야 했던 풍상(風霜)의 한 조각이다. ▶ 기사 더 자세히 보기
◇석가탑의 수난
석가탑은 그동안 지진과 벼락, 도난 때문에 훼손돼 대대적 보수를 거쳐야 했다. 1966년 석가탑 부분 보수 때 '석가탑 중수기(重修記)'가 나오기 전까지 수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중수기는 1024년과 1038년 두 차례 보수한 사실이 있다고 기록했다. 중수기에 따르면 1차 수리 후 10여년 만에 1038년 다시 보수하게 된 이유는 지진 때문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정종대에만 세 차례 지진이 경주를 덮쳤다고 썼다. 조선 중기인 1596년 벼락으로 상륜부가 파손됐다. 1916년 발행된 '조선고적도보'에는 상륜부가 없는 석가탑 사진이 실렸다. 1970년 석가탑 상륜부를 복원하기까지 머리 장식이 없는 세월을 400년 가까이 견뎌야 했다. 1966년에는 도굴꾼들의 손길까지 타서 탑 아랫부분 곳곳에 금이 가고 훼손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석가탑 해체 때 나온 부재들은 모두 재활용하고, 관람객들이 복원작업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해 문화재 교육의 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편 석가탑과 마주 보고 있는 다보탑(국보 20호)은 2008년 부분 해체·보수작업을 하며 부재 8점을 교체한 바 있다.
◇석가탑 용어
상륜부(相輪部). 옥개석 위쪽의 여러 장식물
노반(露盤). 탑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서 상륜부를 받치는 돌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의 지붕돌
갑석(甲石). 기단 위에 덮는 뚜껑돌
▲ 27일부터 전면 해체·복원에 들어간 석가탑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기단부와 탑신부,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相輪部)다. 상륜부는 조선 선조 때인 1596년 벼락 피해를 입어 대부분 사라졌다가 4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1970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델로 새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1200년 넘는 세월을 건너오며 석가탑이 겪어야 했던 풍상(風霜)의 한 조각이다. ▶ 기사 더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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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28 02:58
고려 정종 때만 지진 세 차례 1966년 도굴로 탑 아래 훼손… 다보탑은 2008년에 보수
27일부터 전면 해체·복원에 들어간 석가탑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기단부와 탑신부,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相輪部)다. 상륜부는 조선 선조 때인 1596년 벼락 피해를 입어 대부분 사라졌다가 4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1970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델로 새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1200년 넘는 세월을 건너오며 석가탑이 겪어야 했던 풍상(風霜)의 한 조각이다.
◇통일신라 최대 탑
아래에서 보는 느낌과 달리 석가탑은 거대하다. 높이는 10.8m. 웬만한 3~4층 건물 높이다. 1층 탑신 7.7t, 1층 옥개석 7.1t, 2층 옥개석 6t….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인 만큼 부재 무게도 엄청나다.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을 통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탑 상륜부를 떠받치는 접시 모양 장식인 '노반(露盤)'도 500㎏이나 된다. 이 때문에 석가탑 해체·복원 작업은 탑 상륜부의 장식인 '복발(覆鉢)' 위쪽은 수작업으로 해체하지만, 아래쪽은 크레인을 동원해 해체하게 된다.
◇통일신라 최대 탑
아래에서 보는 느낌과 달리 석가탑은 거대하다. 높이는 10.8m. 웬만한 3~4층 건물 높이다. 1층 탑신 7.7t, 1층 옥개석 7.1t, 2층 옥개석 6t….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인 만큼 부재 무게도 엄청나다.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을 통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탑 상륜부를 떠받치는 접시 모양 장식인 '노반(露盤)'도 500㎏이나 된다. 이 때문에 석가탑 해체·복원 작업은 탑 상륜부의 장식인 '복발(覆鉢)' 위쪽은 수작업으로 해체하지만, 아래쪽은 크레인을 동원해 해체하게 된다.
◇얼마나 훼손됐나
27일 현장에서 본 석가탑은 1층 탑신이 파괴되고, 상하층 기단 갑석(甲石)에 금이 가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상륜부에서는 노반 모서리도 파손됐고, 꼭대기 보주는 금이 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석탑 내부를 채우고 있던 적심(자갈과 흙) 가운데 흙이 거의 빠져나왔기 때문에 각각 6~7t이 넘는 옥개석과 탑신의 무게를 못 견디고 탑 곳곳에 균열이 생기거나 파손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 때문에 부분 보수 대신 탑 전체를 해체해 다시 조립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택했다.
27일 현장에서 본 석가탑은 1층 탑신이 파괴되고, 상하층 기단 갑석(甲石)에 금이 가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상륜부에서는 노반 모서리도 파손됐고, 꼭대기 보주는 금이 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석탑 내부를 채우고 있던 적심(자갈과 흙) 가운데 흙이 거의 빠져나왔기 때문에 각각 6~7t이 넘는 옥개석과 탑신의 무게를 못 견디고 탑 곳곳에 균열이 생기거나 파손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 때문에 부분 보수 대신 탑 전체를 해체해 다시 조립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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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탑 아래 땅 속? - 석가탑 동쪽 측면에서 탐사한 전기비저항 단면도. 전기비저항탐사는 땅속에 전기를 흘려 전류 흐름에 저항하는 물질 특성을 측정, 땅속을 영상화시키는 방법. 석가탑 바로 아랫부분은‘다짐층’때문에 지하 4m까지 전기비저항도가 높게 나타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석가탑은 그동안 지진과 벼락, 도난 때문에 훼손돼 대대적 보수를 거쳐야 했다. 1966년 석가탑 부분 보수 때 '석가탑 중수기(重修記)'가 나오기 전까지 수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중수기는 1024년과 1038년 두 차례 보수한 사실이 있다고 기록했다. 중수기에 따르면 1차 수리 후 10여년 만에 1038년 다시 보수하게 된 이유는 지진 때문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정종대에만 세 차례 지진이 경주를 덮쳤다고 썼다. 조선 중기인 1596년 벼락으로 상륜부가 파손됐다. 1916년 발행된 '조선고적도보'에는 상륜부가 없는 석가탑 사진이 실렸다. 1970년 석가탑 상륜부를 복원하기까지 머리 장식이 없는 세월을 400년 가까이 견뎌야 했다. 1966년에는 도굴꾼들의 손길까지 타서 탑 아랫부분 곳곳에 금이 가고 훼손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석가탑 해체 때 나온 부재들은 모두 재활용하고, 관람객들이 복원작업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해 문화재 교육의 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편 석가탑과 마주 보고 있는 다보탑(국보 20호)은 2008년 부분 해체·보수작업을 하며 부재 8점을 교체한 바 있다.
◇석가탑 용어
상륜부(相輪部). 옥개석 위쪽의 여러 장식물
노반(露盤). 탑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서 상륜부를 받치는 돌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의 지붕돌
갑석(甲石). 기단 위에 덮는 뚜껑돌
- 1270년 만의 전면 해체… 석가탑 밑엔 어떤 보물이 경주=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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