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과학

[기고] 과학기술, 아마추어들 개입 막아야

[기고] 과학기술, 아마추어들 개입 막아야

  •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입력 : 2012.12.25 22:58

    인기 영합 유혹과 조급성 경계하고 단계별로 차분히 기초 다져가야…
    캠프 출신 인사들 지나친 참견 금물… 정부는 거시적 틀 사업은 전문가가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과거 대선 과정을 살펴보면 후보자들 간에 가장 차이가 작은 분야가 과학기술이었다. 모두 나라 발전에 매우 중요한 분야이므로 적극 지원하겠다고 주장하다 보니 공약의 방향과 내용이 대동소이하였다. 그러나 막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과학기술은 경제·안보·정치 현안에 밀려 집권자가 챙겨야 할 우선 목록에서 하위에 자리매김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그 전문성 때문에 집권자는 물론 핵심 인사들조차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집권 세력 내의 아마추어들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미사여구로 치장해 듣기에는 그럴듯한 정책을 세우고, 그 때문에 혼란이 생기면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핵심 세력이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자.

    무엇보다 과학기술은 인기 영합성 정책에 대한 유혹과 성과에 대한 조급성을 경계해야 한다. 황우석 사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의 강박감 속에서 탄생한 세계적 스캔들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이나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같은 이슈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정책 실패를 자초할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성격대로 차분하게 단계별로 기초를 확실히 다지면서 내실이 있는 정책을 펼치기 바란다.

    새로운 집권 세력은 항상 지난 정권과 차별성을 명확히 보여주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인수위 시절이나 정권 초기에 신사업을 벌이려는 경향이 강한데, 과도한 의욕을 조절해야 한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예산은 장시간의 기획과 평가를 거쳐 만들어진다. 집권 세력이 신사업을 단기간에 추진하려다 보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다른 사업의 예산을 전용하거나 삭감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달리한 사업들이 만들어졌지만 결국 예전 사업을 내용은 거의 그대로 놔두고 포장만 바꾸는 촌극이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에게 일대 혼란과 불안감을 조성하고 원하던 신사업도 효율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미래 사업을 계획하기 바란다.

    또 선거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분야가 워낙 많고 사업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크게 다르다.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이들은 거시적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구체성에서는 균형 감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선거는 단기간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이지만 정책은 긴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여러 세력과 분야 간의 전쟁이다. 과학기술은 매우 다양한 분야와 이질적인 문화의 집합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사에 임하기 바란다.

    박 당선인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독립 과학기술 부서 설립은 많은 과학기술인의 염원이었으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사업까지 관(官)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예전 방식으로 회귀한다면 이는 퇴행이라 할 것이다. 예산의 거시적 틀과 방향은 정부가, 미시적 사업 내용은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경제 발전, 국방 자위력 확보, 복지 확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대한민국이 일등 국가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융·복합성을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투자 방향과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적 자원 확보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