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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학

소리없는 병기 의자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170) 소리 없는 살인 병기, 의자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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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2.07.16 23:26 | 수정 : 2012.07.17 19:4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적어도 일년에 강의를 100회 이상 하며 산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사람들은 내게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누가 더 수고한 것일까? 강의를 하는 나는 그나마 사람답게 살았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떠들며 살았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1시간 이상 의자에 묶여 꼼짝도 하지 못한다. 활과 창을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도록 진화한 동물로서는 참으로 못 할 짓이다. 그래서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재미있게 할 의무가 있다.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 생명의학연구소와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아지고 수명도 단축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일하는 사람은 비만, 당뇨, 지방간 등의 질병을 얻을 위험이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발병하는 암 중 적어도 17만 케이스가 오랜 의자생활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방암과 대장암이 특별히 관련이 깊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하면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54%나 높아진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앉아 있은 여성들은 3시간 미만 앉아 있은 여성들에 비해 13년 동안 조사한 사망률에서 40%나 높게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어디까지나 개체군 수준에서 분석된 것들이다. 따라서 개인 차원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조심스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을 3시간 줄이면 2년을 더 살 수 있고, 텔레비전을 2시간 덜 보면 1.38년을 더 살 수 있다고. 그렇다면 더 편안한 의자를 만들려고 애쓰는 디자이너들은 실상 소리 없이 우리를 죽이는 살인 병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느덧 우리 대부분은 늘 서서 일하다 잠시 앉아서 쉬는 게 아니라 늘 앉아서 일하다 가끔 일어나서 일부러 걸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시간 앉아 있는 데 따라 기대수명이 무려 22분이나 줄어든다는데 이 글을 쓰느라 애쓰는 동안 내 수명은 또 얼마나 줄어든 것인가? 매주 나는 이 칼럼에 원고를 보내기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 거의 50번을 고쳐 쓴다. 글과 수명을 맞바꾸는 거래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