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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한한 힘/신비한 몸

'선구자' 박찬호와 류현진

[조선데스크]

  • 강호철 스포츠부 차장

    입력 : 2012.12.18 22:08

    강호철 스포츠부 차장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박찬호는 그리웠던 국내 무대에서 올 시즌을 마친 다음 유니폼을 벗었다. 1990년대 우울한 경제 암흑기를 보냈던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호쾌한 투구를 보면서 시름을 달랬다. 박찬호의 활약상을 보면서 꿈을 키웠던 류현진은 연봉 총액 3600만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태평양 건너 빅 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국내 프로야구 최정상에 오른 그는 목표 지점을 잃고 추락할 시점에 과감하게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거친 황야에 몸을 던졌다.

    박찬호는 개척자였다. 야구 최고수들이 즐비한 미국 무대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야구인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이던 박찬호에게 선구자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한(恨)을 달래야 했던 시간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영어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혀가 꼬부라져 있는 것을 보고 "1년 미국물 먹었다고 미국 사람 다 됐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박찬호는 그런 역경을 딛고 메이저리그 최정상에 올랐다.

    공교롭게 박찬호가 마지막 소속했던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은 국내 프로 무대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제2의 박찬호'가 되어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갈 류현진의 앞에는 박찬호와는 또 다른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류현진의 활약은 한국 프로야구 수준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국내 야구팬의 기대대로 제 몫을 다해내면 한국 야구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올라간다. 만약 그가 실패하면 한국 야구는 저평가의 틀에서 못 벗어날 것이다. TV에서 박찬호의 활약을 보고 꿈을 키웠던 류현진은 이제 자신을 보며 제2의 도전을 꿈꾸는 어린 야구 선수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줘야 할 책임이 생겼다.

    1994년 박찬호의 미국 진출은 한국 야구에 큰 위기를 안겨줬다. 그가 활약하는 메이저리그의 수준을 눈으로 본 한국 팬들은 동네 야구 수준인 국내 리그에 등을 돌렸다. 1995년 처음으로 연(年) 관중 500만명을 돌파했던 국내 리그는 이후 추락을 거듭하며 연 관중이 200만명을 겨우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찬호가 뿌린 씨앗은 밀알이 돼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야구의 중흥기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 베이징올림픽과 두 차례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거둔 좋은 성적의 주역들이 바로 '박찬호 키드'들이었다.

    연 관중 750만명을 넘어선 올해도 야구인들은 '위기'를 얘기한다. 야구 수준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류현진의 미국 진출로 팬들의 애정과 관심이 한순간 메이저리그로 돌아설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KBO는 류현진이 LA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지난 11일 산고 끝에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을 승인했다. 거센 외풍(外風)을 견디기 위한 내부 토양을 마련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류현진의 활약을 보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워갈 어린 선수들도 더 늘어날 것이다. 10년 후 한 단계 더 도약한 한국 야구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