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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 세계정세

일본이 진주만 기습했을때.

[허동현의 모던타임스] [35] 미국이 '자기들의 전쟁'이란 사실을 깨달은 날

  • 허동현 경희대 교수·역사학

    입력 : 2012.12.06 22:51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을 내세우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던 독일과 일본의 침략전쟁을 남의 일인 양 한 발 빼고 바라보고 있었다. 1939년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등 전쟁 물자 수출을 금지하자 일제는 '대동아(大東亞)공영권'을 내걸고 자원 확보를 위한 동남아 침략에 나섰다. "만약 결과와 상관없이 싸우라고 지시한다면 6개월 또는 1년은 미친 듯이 싸우겠다. 그러나 이듬해와 그다음 해에 대해서는 정말 자신이 없다." 1941년 9월 해군 대장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에게 털어놓은 속내가 보여주듯이 일본은 승산 없는 장기전 대신 기습을 통한 기선 제압을 노렸다.

    "당신네는 아직도 산불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래도 아직 한국인·만주인·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싸움을 하라고 하라.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941년 1월 이승만이 미국 뉴욕에서 간행한 '일본 내막기'에서 한 예언은 열 달 뒤 현실이 되었다.

    불타는 진주만 -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군의 공격으로 불타는 미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미군 2390명이 전사한 이 공습으로 미국은 12척의 전함과 171대의 전투기를 잃은 반면 일본의 손실은 미미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6시 하와이 진주만 북방 440㎞ 해상에 숨어든 아카기(赤城) 등 6척의 항공모함에서 183대의 함재기(艦載機)가 날아올랐다. 7시 49분 일본어 '도쓰케키(돌격)'의 첫음절을 딴 공격 신호 '도-도-도'가 무선을 탔다. 4분 뒤인 7시 53분 기습 성공을 보고하는 암호 '도라-도라-도라'가 타전됐다. 이후 두 시간 동안 일본의 제로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어뢰를 장전한 뇌격기들은 진주만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잠자는 공룡의 꼬리를 밟아 깨운 자충수였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립국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미국은 판세를 뒤엎었다. 1945년 8월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이 군국주의 일본의 무릎을 꿇렸지만, 미국은 도쿄 전범 재판에서 침략전쟁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잘못을 범했다. 일본의 우경화가 가시화된 오늘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치욕으로 기억될 날'로 명명했던 진주만 공습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