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1]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이다. BC190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는 로마와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로마의 편을 들었다. 에우메네스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전쟁에서
승리한 공적을 인정받아 건설을 시작했던 이도시를 얻게되자 승리로얻은 재화를 바탕으로 발전
시켰다.
2) 이도시의 이름은 페르가몬의 시조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것이라고도 한다.
그이후 이도시는 성지가 되었다. 대지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 계속 분출되는 "플루토늄"으
로 이름붙인 유독가스 등은 기이하게 여겨젔다.
3) 프리기아ㅣㅇ등 이전에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 현상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히에론 신전을 지었다. 이것이 히에라 폴리스라는 도시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4) 페르가몬이 로마에 양위된 뒤에도 도시는 로마의 직할통치령으로 크게 번영하였으나, 1세기 초에
대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다. 부흥기인 2~3세기는 도시의 황금기로 현재터가 남아 있는
2 개의 대욕장과 극장, 몇개의 신전이 지어 졌다.
5) 로마의 황제, 귀족, 부유층 계급이 휴양을 위해 이온천 도시를 자주 방문 하였다.
6) 비잔틴 시대에는 크리스트교의 중요한 중심지로 총주교좌를 이곳에 두었다. 당시의 유적으로는
나중에 교회로 개축된 대욕장, 성필립보의 기념당 등이 있다.
7) 도시는 느린 속도로 쇠퇴, 터키인이 진출하자 일대는 전쟁터가 되었다. 14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
인의 손에 들어 갔다. 이것도 잠시 1354년 격렬한 지진이 이곳을 강타 하였다. 주민은 사방으로
흩어졌고,붕괴된 도시는 버려저 폐허가 되었다.이러한 이유로 현재볼수 있는 유적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다.
8) 이때 이후에도 대량의 물이 솟아나와 대지를 흘렀다. 두께 2~3cm의 탄산석회 침전물 층이 유적을
덥고 있어서 발굴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한다. 이 수백년간에도 석회붕은 큰 성장을 했을 것
으로 추정된다.
9) 그래 묘지가 3층으로 겹처 있다고한다. 쌓인곳에 흙이 덮혀 또 묘를 세우고, 반복 되였기 대문이
란다.
[사진 설명]
1) 2세기에 건설된 야외 극장.
2)아폴로 신전옆의 플루토니온.
3) 비잔틴 문.
4~6) 비잔틴 유적.
7) 북쪽,욕장, 후에 크리스트 교회로 개조 되었다.
8~10) 집단 묘와 동양적인 묘도 보인다.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로마의 편을 들었다. 에우메네스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전쟁에서
승리한 공적을 인정받아 건설을 시작했던 이도시를 얻게되자 승리로얻은 재화를 바탕으로 발전
시켰다.
2) 이도시의 이름은 페르가몬의 시조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것이라고도 한다.
그이후 이도시는 성지가 되었다. 대지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 계속 분출되는 "플루토늄"으
로 이름붙인 유독가스 등은 기이하게 여겨젔다.
3) 프리기아ㅣㅇ등 이전에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 현상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히에론 신전을 지었다. 이것이 히에라 폴리스라는 도시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4) 페르가몬이 로마에 양위된 뒤에도 도시는 로마의 직할통치령으로 크게 번영하였으나, 1세기 초에
대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다. 부흥기인 2~3세기는 도시의 황금기로 현재터가 남아 있는
2 개의 대욕장과 극장, 몇개의 신전이 지어 졌다.
5) 로마의 황제, 귀족, 부유층 계급이 휴양을 위해 이온천 도시를 자주 방문 하였다.
6) 비잔틴 시대에는 크리스트교의 중요한 중심지로 총주교좌를 이곳에 두었다. 당시의 유적으로는
나중에 교회로 개축된 대욕장, 성필립보의 기념당 등이 있다.
7) 도시는 느린 속도로 쇠퇴, 터키인이 진출하자 일대는 전쟁터가 되었다. 14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
인의 손에 들어 갔다. 이것도 잠시 1354년 격렬한 지진이 이곳을 강타 하였다. 주민은 사방으로
흩어졌고,붕괴된 도시는 버려저 폐허가 되었다.이러한 이유로 현재볼수 있는 유적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다.
8) 이때 이후에도 대량의 물이 솟아나와 대지를 흘렀다. 두께 2~3cm의 탄산석회 침전물 층이 유적을
덥고 있어서 발굴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한다. 이 수백년간에도 석회붕은 큰 성장을 했을 것
으로 추정된다.
9) 그래 묘지가 3층으로 겹처 있다고한다. 쌓인곳에 흙이 덮혀 또 묘를 세우고, 반복 되였기 대문이
란다.
[사진 설명]
1) 2세기에 건설된 야외 극장.
2)아폴로 신전옆의 플루토니온.
3) 비잔틴 문.
4~6) 비잔틴 유적.
7) 북쪽,욕장, 후에 크리스트 교회로 개조 되었다.
8~10) 집단 묘와 동양적인 묘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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