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12 03:00
['…공감의 해석학' 낸 황태연 교수]
"공자, 교감 중시한 현대적 사상가… 마르크스, 正義지상주의 아닐까"
'DJ 策士' 같은 역 또 하겠나 묻자 "조언할 상황 온다면…" 여운도
그는 공자(孔子)에서 '공감(共感)'의 개념을 찾아내고 니체의 철학에서 반(反)중용주의의 혐의를 끄집어내며 하버마스의 해석 개념에 대해 속류적이라고 비판했다. 동서고금의 사상가를 상대로 한바탕 '지적 육박전(肉薄戰)'을 벌인 것이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과 논문만 550여 편. 공자·소크라테스·플라톤·스피노자·칸트·헤겔·다윈·마르크스·니체·하이데거·가다머·롤스 같은 사상가들이 이 지적(知的) 오디세이에 등장인물로 호출됐다. 황 교수는 "학계에서 내 책을 읽고 본격적인 평을 하려면 1년쯤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지적 편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미리 든든한 말뚝을 설치해 둘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에서 공자로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재조명한 논문 '지배와 노동'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건 1991년. 그 무렵 일어난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면서 그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사실은 마르크스 자신이 폭력 투쟁을 정당화하거나 결과적으로 부추기는 '정의(正義) 지상주의' 오류에 빠진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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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인간 본성은 선하다(성선설)’거나 ‘말만 번드레해서는 안 된다(교언영색)’ 같은 공자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좌파 동료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오류가 아니라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후세의 잘못된 해석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1㎜만 틀렸다면, 스탈린이나 김일성은 수십㎞까지 극단적으로 더 나갔던 거죠."
그 무렵부터 황 교수는 공자를 다시 읽어나갔다. 서양 정치사상 전공자의 눈에 비친 공자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사상가였다. 이성적 소통만이 아니라 감정적 교감을 중시한 대목은 1990년대 이후 서구 철학계에서 부상 중인 해석학의 흐름과 상통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는 흡사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황 교수는 "정의와 투쟁 일변도인 서양 학문의 장벽에 가로막히면서 거꾸로 공자에 대한 확신도 깊어졌다"고 했다.
◇正義에서 仁義, 복지에서 행복으로
이 책에서 황 교수는 정의 지상주의와 복지 만능주의를 과녁으로 삼았다. "정의를 신봉하는 좌파 세력은 복지 예산 팽창으로 비효율적 관료주의와 경제난을 초래했고, 시장 만능주의를 내건 우파는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고 세계 금융 질서를 무너뜨려 경제 불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정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싸웠던 좌·우파가 오히려 독단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황 교수는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좌우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패러다임이 인의(仁義)와 행복"이라고 말했다.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소득 증가가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자살률이 증가하는 역설적 현상은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아파트 층간 소음을 실례로 들었다. '복지국가' 관점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행복국가'로 사고(思考)를 확장하는 순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도 있다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이웃을 배려해서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도 삼가도록 하는 독일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좌파 학자의 행복론에 잠시 이질감이 생겼지만, 그는 "옛날부터 나는 부드러운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했다.
◇DJ의 책사에서 낙향한 연구자로
1997년 대선 당시 황 교수는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DJP 연합'을 주창해서 야권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을 역임하면서 'DJ의 책사'로 불렸다. 하지만 2003년 친노 세력의 민주당 집단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황 교수는 현 야권과 일정한 금을 그었다. "중도 개혁주의를 부정하고 좌경화했던 그들이 최근 중도를 다시 부르짖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그의 말에는 감정적 앙금이 남아 있는 듯했다.
황 교수는 "애초 제갈량 같은 참모는 될지언정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무도(無道)할 때는 낙향하고 칩거해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복국가'를 화두로 내거는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꾸 정치만 묻는다"고 타박하면서도 한 가닥 여운을 남겼다. "조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