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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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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진
-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 E-mail : tjoh@chosun.com
- 198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문화부·경제부 기자와 L..
- 198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문화부·경제부 기자와 LA특파원, 문화2부 부장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취재 현장으로 1985년 멕시코 대지진과 콜롬비아 화산폭발, 1990년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북총리급회담, 1992년 LA폭동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두 차례에 걸쳐 4년 남짓 ‘맛 기행’을 연재했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해 주말이면 카메라 메고 길을 나선다. 오피니언면에 쓰고 있는 에세이 ‘길 위에서’는 그 주말 여행의 기록이다. 책은 ‘오태진·이동진의 시네마 기행’(2002년·공저) ‘내 인생의 도시’(2011년) ‘사람 향기 그리운 날엔’(2013년), 세 권을 썼다. 신문엔 고담준론뿐 아니라 독자가 잠시 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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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1981년 조선일보 입사
입력 : 2014.12.29 03:05
고향에 가면 어스름 저녁 무렵 마실을 나가곤 했다. 남녘 항구도시 옛 도심 중앙통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오는 산책 길이다. 그때마다 신기했다. 어릴 적 높고 크던 초등학교 정문 계단이 어찌 이리도 아담한지. '오사카(大坂)'라 불렀던 가파른 찻길에서 극장 골목으로 올라서는 계단은 또 어찌 그리 보잘것없는지. 어른이 돼 키와 보폭이 커진 탓이라고만 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작고 짧다. 나이 들면서 시각 기억이 왜곡되는 현상이다.
▶시간 기억도 비슷하다. 코흘리개 땐 반나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길었다. 이젠 몇 년도 반나절인 양 지나간다.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대사처럼. "지금까진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삶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살아온 세월과 반비례한다"고 했다. 열 살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예순 살 사내는 60분의 1로 여긴다고 했다. 10대 때 시속 10㎞로 가던 세월이 60대엔 시속 60㎞로 간다는 요즘 넋두리와 닮았다.
▶시간 기억도 비슷하다. 코흘리개 땐 반나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길었다. 이젠 몇 년도 반나절인 양 지나간다.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대사처럼. "지금까진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삶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살아온 세월과 반비례한다"고 했다. 열 살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예순 살 사내는 60분의 1로 여긴다고 했다. 10대 때 시속 10㎞로 가던 세월이 60대엔 시속 60㎞로 간다는 요즘 넋두리와 닮았다.
▶나이를 먹어 SCN 세포와 도파민이 줄어들면 SCN 회로가 느리게 진동한다. 그렇게 몸 안 시계가 느려지면 상대적으로 바깥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거꾸로 도파민이 많으면 세상은 느리게 움직인다. 도파민은 즐겁고 행복할수록,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할수록 많이 분비된다. 어린 시절엔 모든 게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다. 남은 기억도 촘촘하게 많아 세월이 길 수밖에 없다.
▶늙으면 어제도 오늘도 비슷한 일상, 단조로운 삶이 이어진다. 그러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새해 새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다른 새해가 코앞에 왔다. 시간을 도둑질당한 것 같다. 그만큼 타성에 젖어 살았다는 얘기다. 시간을 서투르게 쓰는 이가 시간이 짧다고 불평한다. 남은 세월을 선물이라 여기고 도파민이 샘솟도록 살아보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그 꽃'). 깨달음은 한 해라는 산에 오를 때가 아니라 한 해의 마루턱을 내려올 때 얻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