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危機(위기)의 국가 危機의 대통령
-
- 강천석
- 논설고문
- E-mail : mngedit@chosun.com
-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조선일보 주필·편집인 겸 전무이사
-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조선일보 주필·편집인 겸 전무이사
문고리 권력화재 현장 격리, 물러날 사람 물러나야…
대통령 비밀주의, 潔白 증언할 증인마저 없앴다
- 강천석 논설고문
불을 잡는 데도 요령이 있다. 큰불부터 꺼야 한다. 작은 불 곁에서 시간을 까먹다간 큰불 작은 불 사이에 끼여 갇히고 만다. 다음은 빨리 번져가는 불 먼저 잡는 것이다. 그러려면 화재 현장의 풍향(風向)과 풍속(風速)을 정확히 측정할 줄 알아야 한다. 물을 뿌릴지 모래를 끼얹을지는 화재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화재 진압의 기초 상식이 하나 더 있다. 실화(失火)사건이든 방화(放火)사건이든 요주의(要注意) 인물을 화재 현장에서 격리시키는 일이다.
청와대 화재는 발생 며칠 만에 대통령 근처에서 불길이 날름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라의 최고 권력이 모인 곳이 이렇게 무방비(無防備)할 수 있나, 기가 찰 노릇이다. 화재 진압 요령을 숙지(熟知)하고 있는 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위아래 없이 허둥대고 있다. 안채에 불이 옮아 붙는데 행랑채로 달려간다. 작은 불에 매달려 시간만 축낸다. 앞뒤 안 맞는 해명으로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도 계속되고 있다. 실화범(失火犯)인지 방화범(放火犯)인지 아직 가려지지 않는 인간들이 여전히 화재 현장을 활보하고 있다. 출동한 검찰도 초짜 소방대원처럼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다. 마치 불난 집 주인이 진화(鎭火) 작업을 지휘하는 듯하다.
상황 인식을 정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비상(非常)사태다. 청와대 주인의 역사는 기구하다. 30년, 40년,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소통령(小統領)으로 통하던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된 게 불과 20년도 채 안 됐다. 그다음 대통령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감옥에 갔다. 직전 대통령의 형도 교도소로 갔다. 그 험한 세월 속에서도 대통령 본인이 뭔가를 해명해야 할 당사자가 된 적은 없었다.
바로 엊그제 얼마 전까지 장관 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국장과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누군가가 이 사람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해 인사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사태가 비상(非常) 상황이 아니라고 우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대통령 총무비서관, 그 뒤로 정윤회라는 문제의 인물이 따라 등장했다.
전(前) 공직기강비서관은 구체적 실례를 들며 "당시 경찰 인사는 제2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오래, 이렇게 자주, 이렇게 크게 '총무비서관' '제1부속비서관' '제2부속비서관'이란 직책과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했더니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국민 가운데 그들의 상관인 수석비서관들 이름을 한둘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전무(全無)하다. 이건 뒤집어진 세상이다. 대통령 동생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국민 심사는 더 착잡해진다.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불길이 번져가는 속도를 늦춰야 수습의 실마리를 다시 찾을 여지가 생긴다. '대통령의 문고리'들이 실수로 불을 냈는지, 일부러 불을 질렀는지, 아니면 억울한 누명(陋名)을 쓰고 있는지는 앞으로 수사에서 가려질 것이다. 검찰이 밝히지 못하면 그보다 몇 배 유능한 수사관인 세월이 언젠가는 진실을 파헤친다.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요주의 인물인 문고리 권력을 일단 화재 현장에서 격리하는 게 급하다. 그래야 검찰의 화재 감식(鑑識) 결과를 믿어달라고 비빌 언덕이 생긴다. 문고리가 없다 해서 문을 여닫을 수 없는 게 아니다. 잠시 불편할 따름이다. 나라가 위급(危急)한데 그만한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다.
불길을 잡으려면 사건의 재(再)규정이 불가피하다. 그래야 불 끄는 순서가 바로잡힌다. 이번 사태는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린 국기(國紀) 문란 사건이다. 민정수석실의 정보보고서 유출(流出)과 측근과 비선(秘線)의 발호(跋扈)라는 두 가지가 용의선상(容疑線上)에 올라 있다. 어느 쪽이 국가 기강에 더 중대한 타격을 주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 쪽이 아니라 국민 쪽에 서야 진실이 보인다. 민심(民心)의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불도 번져간다. 보고서 유출 부분보다 권한 남용 쪽이 몇 배 빨리 타들어 간다. 그 불 먼저 잡아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비밀주의(秘密主義) 인사가 무슨 사태를 불렀는지 바로 봐야 한다. 과연 무슨 득(得)이 있었는가. 비밀주의에 대한 집착은 대통령 자신과 국가에 상처만 남겼다. 비밀주의의 가장 큰 함정은 본인의 결백(潔白)을 증언할 증인(證人)마저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이제는 절감할 것이다. 대통령은 비밀주의와 결별하고 국정 운영의 투명(透明) 시대를 새로 열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더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번번이 아닌 밤중 홍두깨 같은 인사(人事)를 접하며 느꼈을 국민의 무력감(無力感)과 허탈감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일이 터지자 대통령을 가까이서 오래 모셨던 인사들일수록 '문제의 인물 얼굴을 본 적도, 이름을 들은 적도 없다'고 손을 내둘렀다. 권력의 중심에 '해선 안 될 일을 하는 사람'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모이면 나라와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린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과 물러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여럿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제보박전국세청고위직찌라시보고] > [청와대] 대통령* 전직장관반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대통령-전직장관의 충돌, '국정 亂脈' 어디까지 갈 건가 (0) | 2014.12.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