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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은행나무 숲의 감동.

눈물 나도록 예쁜 노랑

  •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 입력 : 2013.10.10 04:00 | 수정 : 2013.10.10 09:58

    가을을 즐기려는 당신에게, 10월 한 달 강원도 홍천을 드린다. 맘대로 남의 땅을 주고 받겠다는 말이 아니라, 홍천이 가지고 있는 그 풍성한 가을을 드린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지자체 가운데 면적으로 으뜸은 강원도 홍천군이다. 서울보다 두배가 더 넓은 땅이 동서로 뻗어 있다. 그 너른 땅을 동과 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56번 국도인데,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가을 여행길’로 소문나 있다. 부산에서 함북 온성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7번국도가 여름 드라이브코스라면, 가을에는 당연히 이 56번 국도다. 온갖 색깔 단풍과 더 이상 맑을 수 없는 개울과 강이 이 도로변에서 출렁댄다. 홍천군에서는 이 길에 ‘구룡령길’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했다. 최고 해발 1000m에 이르는 헤어핀 고개(실핀처럼 360도 구부러진 길)다.

    세상은 온통 노랑. 이달 말까지 공개되는 홍천 은행나무숲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그렇게도 더웠던 여름이 가버렸고 순식간에 가을이 왔다. 당도한 속도만큼 사라지는 속도도 빠를 이 계절을 즐기기 위해 이번 주에는 홍천 56번 국도로 간다. 워낙 코스가 길다 보니,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이 가운데 몇몇만 골라서 갈 수밖에 없겠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목적지는 다음과 같다.

    홍천 살둔마을→은행나무숲→갈천약수→미천골 선림원지→양양 하조대

    살둔마을과 살둔산장

    살둔산장 옆에 위치한 살둔계곡

    동쪽에서 출발해 도로가 홍천군 내면을 지나면 446번 지방도가 떨어져나가는 원당삼거리가 나온다. 이 길로 오롯이 들어가면 살둔마을이 나온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정감록에 나온 11승지 가운데 하나다. 살둔이라고도 하고 생둔이라고도 한다.

    지금이야 길이 뚫려 있지만, 길 끝에 나오는 이 마을은 아는 사람만 알던 가기 힘든 곳이었다. 특히나 1985년에 세워진 살둔산장은 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주인이 몇 번 바뀐 지금은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일종의 펜션과 캠핑장으로 변신했다. 묵지 않아도 좋다. 대신 사대부집, 절집, 일본집이 가진 장점만 요모조모 잡아내 만든 희한한 외형은 반드시 일별하기로 한다. 이 별유천지비인간에서 하루를 묵으면 뒤로 흐르는 물살 거센 개울과 사방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이 당신 것이다. 살둔마을 홈페이지에서도 숙박을 구할 수 있다.

    은행나무숲

    그리고 30분 뒤가 되면 당신은 눈물 나도록 예쁜 공간으로 틈입하게 된다. 살둔마을에서 승용차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개울가에 그 숲이 숨어 있다. 여름이 지날 무렵부터 전국 사진가들이 안부를 물어대던 은행나무 숲이다. 3년 전까지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범접하지 못했던 이 은행나무 숲은 2010년 이맘 때 주인 유기춘(70)씨가 슬그머니 공개했다.

    그 푸른 가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착한 농부 유기춘씨가 가꾼 은행나무 숲이다.사진에서 보듯,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짙은 노란색 공간은 순식간에 ‘홍천 10경’ 가운데 하나로 등재됐고 올해로 3년째 도로변은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당신은 가야 한다. 손에 잡히는 바로 코 앞에서 대한민국 가을의 정수(精髓)를 맛볼 수 있으니까. 2000그루가 넘는 은행나무가 30년 되도록 너른 들판에서 자라나 지금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창조했다. 눈물까지야 아니겠지만, 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 메마른 사람이라 장담한다.

    56번국도 창촌삼거리에서 양양쪽으로 18km를 가면 나온다. 굳이 이정표를 볼 필요는 없다. 한적하던 도로가 문득 길이 막히고 양편으로 자동차들이 도열해 있고 먹거리 파는 노점들이 보이면 바로 거기다. 어렵사리 차를 대고, 작은 다리를 건너 짧은 오솔길을 걸어들어가면 녹색 철책 뒤로 샛노란 거인들이 도열해 있다. 나머지는 말이 필요없으니 생략. 주인 유기춘씨 말을 참고하시라.
    “아내가 위장이 안 좋아 약수 뜨러 다니다가 봐둔 땅을 사서 은행을 심었다. 자꾸 입장료 받아야 하지 않냐고 묻는데, 도대체 배추밭 지나간다고 돈을 받는 농부가 세상에 어딨나. 여기는 밭이다, 은행 밭.”
    부지런하고 너그러운 이 농부를 위해, 은행 숲에 가거들랑 쓰레기 버리지 않고 조용히 추억만 남기고 오시기를.

    구룡령과 갈천약수

    (좌부터) 주민들이 돌덩이로 갈천약수터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 갈천약수터 / 갈천약수 연리지

    숲에서 나와 다시 20km 정도 동쪽으로 간다. 그 길목에 구룡령이 있다. 당신이 차를 모는 운전자라면, 동행한 친지들을 질투하게 되는 고개다. 운전자는 절대 그 비경에 한 눈 팔지 마시라. 여름과 가을이 혼재된 산줄기. 그리고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구절양장 고갯길. 헤어핀을 몇 군데 경험하면 오른편으로 작은 폐교가 나오고 약수터 이정표가 왼편에 나온다. 자, 긴장. 4륜구동 차량이 아니라면 승용차는 적당한 곳에 세운다. 뚜벅뚜벅 걷는다.

    우거진 숲에 태양이 빛을 발하지 못한 터라 곳곳에 고사리며 이끼??음지 식물들 흔적이 남아 있다. 20분 정도 완만한 길을 올라간다. 길, 예쁘다. 멀리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서 50m 정도 못 미처 왼편으로 쉼터가 있다. 주민들이 돌들을 날라 만든 쉼터다.

    갈천약수는 철분이 많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쉰 맛이 특징이다. 주변 바윗돌들도 철분 덕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약수가 목적이 아니다. 약수터까지 오르는 완만한 산길이 목적이다. 오른편 개울과 왼편 산등성이에서 유유적적 물들고 있는 단풍들이 목적이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누구라도 오를 수 있는 산책로이니, 당신이 은행나무 숲의 감동을 곰삭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본다.

    미천골 자연휴양림

    선림사지

    그 쌉싸레한 물로 속을 씻고 동쪽으로 간다. 7km만 가면 미천(米川)골 자연휴양림이다. 걷든 차로 가든, 7km가 넘는 이 계곡을 가면서 가을을 맞는다. 초입에 있는 선림사지는 1000년 전에 융성했던 절 터다. 남은 것이 4개인데, 그 4개 몽땅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쓸쓸하고 황량하고 때로는 서럽다. 밥을 지을 때면 개울이 하얗게 됐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았다. 그래서 말문을 닫은 거북이,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다 사라진 석탑과 석등이 초추의 태양 아래에 반짝이는 것이다.
    휴양림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살던 사람들은 휴양림 속에 있는 마을에 펜션 집단을 만들었다.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숙박시설이다. 주요 리스트는 아래 여행수첩을 보시면 되겠다.

    미천골 하나만 해도 이 가을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과욕이면 여행은 지옥이다. 하여 사십분이면 닿는 양양 하조대도 굳이 권하지는 않겠다. 가겠다면 일찍 떨어지는 해를 두려워하며 얼른얼른 다녀오시면 좋겠다. 하조대 가운데에 있는 바위더미에 오르면, 파도에 휩쓸린 미친 멸치 떼가 매운탕감이 되겠다며 발치에 걸리는 행운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남거들랑 양양에서 남하하는 7번 국도를 타도 좋겠다. 연중무휴로 훌륭한 드라이브코스로 꼽히는 도로다. 함북까지야 갈 수는 없지만 7번국도만큼 여름에 어울리는 도로는 보지 못했다. 그 도로가 가을길 56번 국도와 붙어 있다.

    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홍천군, 그 땅을 가로지르며 사람들 미치게 만드는 가을 이야기 여기에서
    일-단-멈-춤.

    인포그래픽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추천 여행지

     

    여행 수첩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