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9.13 03:21
4년前 이 장관 혼외자는 私的 이슈, 이번엔 은폐·거짓말 논란에
청문회 직전 이사 등 의혹까지… 채 총장은 '정치적 흔들기' 주장
공직자 정직성 관련된 公的 이슈, 반드시 사회적 검증 거쳐야
박정훈 디지털담당 부국장
2009년 11월, 이만의 당시 환경부 장관이 혼외자(婚外子) 논란에 휘말렸다. 이 장관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진모(당시 35세)씨가 그를 상대로 친자(親子)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진씨는 1970년대 초반 이 장관이 총각 시절에 자기 어머니와 교제했고, 그 사이에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도덕적 흠을 이유로 퇴진을 요구했으나 이 장관은 거부했다. 법정 공방 끝에 재판부는 결국 이 장관 딸이 맞는다며 진씨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기자는 이 장관 퇴진 요구가 부당하다는 칼럼을 썼다(2009년 11월 19일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사생활 문제가 직무와 관련이 없는 한 '공적(公的) 이슈'가 아니고, 따라서 공적인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는 요지였다. 이 칼럼은 지금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에서 일부 언론 등에 의해 자의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4년 전과 딴소리를 한다며 조선일보가 정치적 의도로 채 총장을 흔든다고 공격하고 있다.
걸핏하면 정치 음모론을 들이대는 일부 그룹의 상상력 넘치는 해석에 일일이 대응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 지금 채 총장을 둘러싼 논란과 이 장관 케이스는 여러 면에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4년 전 이 장관의 혼외자 문제는 사적(私的) 이슈였다. 당사자 간 개인적 다툼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고, 규명할 공적인 의문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면 채 총장 문제는 명백한 공적 이슈다. 공직자의 행적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야 할 사실 확인의 문제가 됐다. 사안의 본질도 그렇고, 여기에다 채 총장 본인의 애매한 대응이 의혹을 자초한 측면까지 겹쳐 그렇게 돼 버렸다.
첫째, 이 장관의 경우 은폐 혹은 거짓말 논란이 없었다. 혼외자 문제가 주간지에 보도되자 이 장관은 과거 교제 사실을 곧바로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입적(入籍)·부양 책임을 다투었다.
반면 채 총장은 내연관계 의혹을 빚은 임모(54)씨와의 관계를 모르는 척 숨겼다. 처음 혼외자 의혹이 제기되자 "모르는 일"이라며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고, 임씨를 안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했거나 최소한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정직성, 발언의 진실 여부는 개인 문제가 아니다. 사생활의 범위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따지고 검증해야 할 명백한 공적 이슈다.
둘째, 이 장관 사건은 사실관계가 단순 명확해 딱히 의혹이랄 것이 없었다. 반면 채 총장의 경우 당사자들의 애매한 피해가기로 의혹을 증폭시켰다. 채 총장은 검찰 조직 뒤에 숨었고, 임씨는 잠적해 편지 한 장 띄우는 것으로 사실 규명을 피했다. 임씨는 언론사에 보낸 편지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가게 손님 이름을 도용했다고 해명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느냐는 지적들이 많다. 이런 의혹들이 있는데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덮어둘 수는 없다.
셋째, 이 장관은 환경부 조직이나 부하 직원을 개입시키지 않았다. 해명하거나 사과할 때 본인이 직접 나섰다. 반면 채 총장은 대변인실·범죄정보기획관실 같은 검찰 조직과 간부들을 동원해 대응하려 했다. 조직 뒤에 숨는 바람에 되레 문제를 더 공적 이슈로 키웠다.
넷째, 정치적 물타기 차이다. 이 장관은 당시 4대강 사업의 주무 장관으로 야당·좌파의 공격을 받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퇴진 요구에 정치적 수사(修辭)로 반박하지 않았다. 반면 채 총장은 혼외자 의혹이 제기되자 바로 '정치적 흔들기'로 사건을 규정했다. 의혹을 명확하게 해명하기도 전에 정치 쟁점으로 초점을 바꾸려 한 것이다.
다섯째, 이 장관은 혼외자 문제가 장관직 임명과 무관했다. 그가 장관으로 임명된 후 보도를 보고 미국에 살던 혼외 딸이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채 총장의 경우, 공교롭게도 인사청문회 직전 임씨 모자(母子)가 살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청문회 때 이 문제가 불거졌다면 아마도 그는 검찰총장이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임씨는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더 비싼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들을 해외유학까지 보낼 수 있었던 금전적 배경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
채 총장 사건엔 국민이 알권리를 행사할 요소들이 너무도 많다. 채 총장에게 쏟아지는 의혹들 하나하나가 공직자의 정직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곧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채 총장의 결백이 입증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느 쪽이든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사회적 검증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생활 문제라고 넘어가기엔 의혹들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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