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31 03:00
'꽃제비'로 중국서 함께 생활, 작년 1월 한국 온 김강식씨
"11세 때부터 중국오가며 같이 구걸했던 아이들… 北送 직전에도 1명과
통화
평양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어… 국제사회가 도와달라"
―이번에 북송된 9명과의 관계는?
"내가 양강도 혜산 출신인데 거의 대부분이 아는 친구들이다. 11세 때부터 북한에서 구걸 생활을 했다. 이후 중국에서 왔다갔다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다. 일부는 같이 학교 다니고,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도 있다. 꽃제비, 한국말로 하면 노숙자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고 도둑질하면서 살았다."
―언제 한국에 왔나?
"나는 2010년에 9명이랑 함께 북한에서 나왔다. 이후 중국에 와서 도와주시는 주 목사님을 만났다. 그다음에 6명이 더 합류해서 15명이 한집에서 지냈다. 15명 중에서 조(組)를 짜서 나를 포함해 3명이 먼저 (한국에) 입국했다. 12명이 남아 있었는데 미국으로 3명이 갔다. 나는 중국에서 1년 7개월 있다가 2011년 중국에서 나와 2012년 한국에 왔다.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1명은 나 있을 때는 없었다. 모르는 아이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주 목사님이 도와주셔서 한집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했다. 수학, 한글, 성경, 영어 등을 공부했다. 밖에 돌아다니기 어려우니까 쉬는 날에는 TV를 봤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나?
"탈북하다가 붙잡혔던 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북에서 맞아서 머리에 상처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 상태가 나빠서 나이보다 키가 작다. 여자 아이들과는 친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다.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남자 아이들끼리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몇은 수학, 영어 등에서 공부를 잘했다."
―아이 가운데 일본인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다. A(23) 어머니가 일본 여자였고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평양에 산다더라.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지나가는 소리로 언뜻 들었다.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 잘 안 한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평양에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랑은 2010년에 만나서 이제 알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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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MBC 제공
"중국에서는 계속 연락했다. 통화할 때 한국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온다니까 좋아하면서 웃기도 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 중 1명과는 지난 8일 무렵에도 전화 통화 했다. 한국에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중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더라."
―북송된 친구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평양으로 가면 정말 나오기 힘들다. 나는 (탈북하다 붙잡혔을 때) 양강도에 있어서 6개월 만에 나왔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처형될 가능성?
"30% 정도 될 같다."
―한국에 오려는 꽃제비들이 많나?
"많지만 혼자는 힘들다.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능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국, 동남아 등에 많이 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동생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고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국정원에도 전화하고 하나원에도 전화했다. 그쪽에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는?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인데, (한국이) 힘 좀 써주면 좋겠다."
―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 가면 못 만난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꽃제비 9명 중 1명의 어머니가 일본인? 논란 이용수 기자
- 南北 외교장관, 7월 브루나이 ARF서 만날 듯 이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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