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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국민 행복 제안" 발언대

[사설] 빚 갚을 능력 키울 정책 함께 내놔야 빚 탕감도 산다

[사설] 빚 갚을 능력 키울 정책 함께 내놔야 빚 탕감도 산다

입력 : 2013.05.27 02:59

정부가 서민들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규모 채무조정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4일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푸어'에 대해 은행권과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가 대출금 상환기간을 최대 35년까지 늘려주거나 금리를 낮춰주기로 했다. 모두 2조원을 들여 2만2000가구를 지원한다.

정부는 지난 4월에는 1억원 미만 빚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원금을 70%까지 깎아주는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켰다. 한 달 만에 신청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수혜자가 7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엔 외환위기 때 기업 대출에 연대보증을 섰다가 기업 부도로 채무 불이행자가 된 11만명에게 원금의 40~70%를 줄여주는 구제책을 발표했다. 신용회복위원회와 자산관리공사의 채무조정 사업도 지원 대상을 크게 늘렸다. 이 채무조정 사업들을 모두 합치면 100만명이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한다.


345만명에 이르는 채무 불이행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태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빚을 일부 탕감해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복지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채무 감면·조정을 무조건 늘리기만 하면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의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는 것도 이런 '모럴해저드'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런 대책이 독(毒)이 되느냐 약(藥)이 되느냐는 채무자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고 채무 조정 후 남은 빚을 성실하게 갚아나갈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는 데 달렸다. 채무자에 대한 사후(事後) 관리도 중요하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사업만 해도 중도 탈락률이 30%에 이른다. 빚을 일부 탕감받더라도 소득이 없으면 남은 빚을 갚지 못해 또다시 채무 불이행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서민을 구제하는 채무 조정 정책이 성공하려면 빚 갚을 능력을 키워줄 성장·일자리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