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23 08:00
정부가 꽉 막힌 부동산 거래를 늘리기 위해 4·1대책을 내놓았지만 복병은 아직도 여러 곳에 있다. 정부 스스로도 밝혔듯 이번 대책은 거래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집값 상승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많다.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이 거래량 증가에
대비, 선제적 매수를 주문하고 있지만 대세 상승으로까지 여기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시장 반응도 현재로선 관망세가 우세하다. 일부
지역은 오히려 하락세다. 일각에서는 무주택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경우 5년간 양도세를 비과세 해주는 세제혜택이 제2, 제3의 하우스푸어를 양산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4·1대책에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고, 대출금리를
낮추는 등 많은 혜택이 있어 이들이 과도하게 빚을 내 주택을 매입할 경우 깡통주택이 대량으로 발생해 앞으로 큰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기 무리한 대출 화근
그렇다면 무주택자들은 이번 4·1대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목적에 맞게 매수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분양대행사인 유성의 김현철 부장은 “하우스푸어에 대한 학습
효과 탓인지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집값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서도 세대원수 등을 고려해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재무 설계 전문가들은 최근 2~3년 사이 발생한 하우스푸어 원인에서 자산관리 해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경기 일산에 사는 정순원씨(가명·35)는 이제 막 석 돌 된 자녀를 두고 있는 맞벌이 가정의 가장이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그가 부인과 맞벌이로 벌어들이는 월
소득은 510만원. 그러나 매달 그는 마이너스 통장에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 살아가고 있다.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은 마이너스
80만원이다. 그가 이토록 힘든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지금 사는 일산신도시의 A아파트를 매입하면서부터다. 결혼 후 줄곧
전세살이를 해온 그는 100㎡(30평) 초반대의 아파트를 3억7000만원에 매입했다. 은행 대출은 매입가의 60%인 2억3000만원을
받았다.
- 높은 가계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상담하는 한 고액체납자
그러나 영업직인 탓에 매달 일정한 생활비를 벌지 못한 그는 이 집을 담보로 2, 3금융권에서 고금리로 추가 대출을 받아 지금은 대출금이
집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해 있다. 그 사이 집값은 3억1000만원대로 매수 당시보다 15% 가량 떨어졌다. 집값에서 대출금을 빼고
나면 사실상 자기 자본이 전혀 없는 ‘깡통주택’이 된 것이다. 정씨는 “매수 후 몇 달 동안은 집값이 올라 추가로 대출을 받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그가 이자로 내는 돈은 매달 180만원에 달한다. 어린이집 보육비 등 교육비와 기본
생활비를 빼고 나면 사실상 여유자금이 한 푼도 없기에 몇 달 전에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 역시 부채인
탓에 그의 재무상태는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6년 이상 납입해온 보험과 펀드 등을 손해를 보더라도 중도에 해지해 현금을
마련할 생각이다. 신동준 A+에셋 파트장은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상당수 고객들이 장기로 운영해온 보험, 적립식 펀드를
깨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월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을 계산할 때 맞벌이보다는 외벌이를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김영돈 티엔브이어드바이저스 광화문지점장은 “20~30대 무주택자 대부분이 맞벌이생활을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무 설계를 짜는데 실상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면 직장생활을 해오던 여성의 절반이 퇴직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그러면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의 전환, 여기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교육비 지출이 급증하는 시기가 무리한 대출로 집을 구입한 것과 맞물릴
경우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나날이 커지고 있는 자녀교육비와 은퇴 후 노후자금을 차곡차곡 준비하기
위해서도 무리한 주택 구입은 금물이다. 서기수 A+에셋 자산관리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집을 사고 싶다면 자녀가 어릴 때나 부부가 맞벌이로 소득이
많을 때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해마다 늘고 있는 사교육비 지출은 내집 마련 수요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지난 4월10일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모들이 한 명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양육비로
3억896만4000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2억6204만4000원과 비교해 17.9%
늘어났다.
맞벌이라도 가처분소득 보수적으로 계산해야
재무 설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상적인 부채 비율은 자산 대비 35~40% 수준이 적당하다. 여기서 말하는 부채는 단순히 내집 마련에 따른 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까지 포함된 총 부채금액을 의미한다. 집값의 60% 이상을 대출금으로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위험하다.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여유자금)을 기준으로 하면 30% 내외가 적당하다.
가처분소득 용도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무 설계
전문가들은 소득에서 고정지출을 뺀 잉여자금 성격의 가처분소득은 맞벌이는 소득의 50%, 외벌이는 20~30%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부동산 대출로
인한 이자소득과 고정지출 비중이 전체 소득의 80%를 넘는다면 가계 자산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또 갑작스런 집값 하락과 이자부담
증가에 대비, 비상예비자금을 3~6개월 정도 확보하는 것도 안정적인 가계 재무 설계에 중요한 부분이다. 비상예비자금은 수입 없이 매달 고정적인
지출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성격이다.
송창섭 기자
/ 이코노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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