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16 08:00
4·1 부동산대책의 숨겨진 진실
젊은 세대 ‘부동산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비판
봇물…
‘깡통주택’·‘깡통전세’ 급증 우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과 거래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지난
4월1일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하 4·1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것.
그러나 경기침체와 주택 과잉공급이라는 큰 흐름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젊은 세대를 ‘부동산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만 거세지고
있다.
- 인천 청라신도시
박근혜 정부가 정권 출범 이후 가장 우선적으로 부동산 거래 정상화 조치를 발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부동산 시장 사정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거래 위축이 이명박 정부를 넘어서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되면서 역대 정부마다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땅값변동률은 0.066%에 그쳤다. 0.1% 이하에서 땅값변동률이 움직이는 것도 벌써 2년째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내수 살린다
반대로 무주택서민들의 주거난을 대변하듯 전셋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소득 감소 탓도 있겠지만 매매값이 오르지 않다 보니 전세에서 매매로 옮기는 경우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예전 같으면 매수에 나설 세입자들이 전세로 눌러 앉으면서 매물 부족 현상을 초래시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월간 KB주택가격동향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매매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국적으로는 59.6%, 서울은 53.6%를 기록했다. 전국, 서울 가릴 것 없이 비율이 매달 꾸준히 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대 현안 중 하나가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해소다.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는 투기라는 탐욕이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이다. 불확실한 경기 흐름 속에서 불패 신화를 쫓던 투자자들에게 부동산은 대박이 아닌 쪽박을 선사했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이 한국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지목하던 가계부채가 올해 초 1000조원대를 돌파한 데는 부동산 광풍이 한몫을 차지했다.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보유해온 집을 경매로 넘기는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깡통주택,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깡통주택이란 대출을 끼고 구입한 주택의 매매값이 시간이 지나 대출금 수준까지 떨어진 경우를 말한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집을 경매로 처분하더라도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상환하지 못하는 ‘깡통주택’을 가진 사람들이 1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말을 기준으로 시가 대비 경매낙찰가 비율을 의미하는 낙찰률(1~10월 평균 76.4%)을 초과한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3조원으로 집계됐다. 당시 금감원은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 취약계층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등을 이유로 주택담보대출의 잠재위험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깡통전세 역시 무리한 대출이 화근이기는 마찬가지다. 경매로 넘어간 전셋집이 전세가 이하로 낙찰돼 세입자가 고스란히 전세금을 떼일 형편에 놓인 것이 바로 깡통전세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래 최악에 직면해 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상황은 더 심각하다. 1998년에는 외환위기라는 내부변수만이 있었을 뿐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 여건은 나쁘지 않아 거래가 얼마 후 회복됐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와 천양지차다. 구조적인 공급과잉에 얼어붙은 경기 불황은 빈사상태에 빠진 부동산시장에 해결책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 대형건설사로 분류되는 10대 건설사마저 심각한 경영 위축에 직면해 있다. 10위권 밖의 건설사는 상당수가 법정관리 내지는 워크아웃이라는 극약처방을 받았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일단 정부는 거래 활성화에 초강수를 둔 모습이다. 이번에 발표된 4·1 부동산대책에는 박근혜 정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제 사령탑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4월15일 열린 여야정 정책협의회 자리에서 “4·1 부동산대책은 경기 회복뿐 아니라 민생안정의 핵심과제”라며 정치권의 협조를 구한 것도 정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경제 브레인인 김광두 국가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서 창조경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경제정책 라인에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정권의 최일선 과제로 삼은 것은 부동산 거래가 가진 선순환 효과를 기대해서다. 주택 거래는 특성상 자영업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정부는 어렵게 피운 군불이 아랫목(거래 활성화)에서 윗목(서민생활 경제 회복)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 1. 4·1부동산대책 발표일 부동산중개업소가 몰려 있는 송파구 잠실동 상가 모습 2. 경기 남양주 별내지구 아파트 개발 현장 3. 인천 청라신도시 / 사진: 유진행
우선 연내 주택을 구입하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취득세를 면제하는 것과 동시에 지원규모를 기존 2조5000억원에서 5조원으로 늘렸다. 대출금리도 최저 3.3% 수준까지 낮췄다. 또 9억원 이하 신규분양주택이나 미분양 주택 내지는 1세대 1주택자가 보유하고 있는 9억원 이하·85㎡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앞으로 5년간 양도소득세를 비과세받는다. 청약제도도 대폭 손질해 85㎡ 초과 중대형 주택에 대해서는 ‘청약 가점제’를 폐지하고, 85㎡ 이하 주택의 경우에는 가점제 적용비율을 75%에서 40%로 낮췄다.
대책 발표 후 시장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일단 주택관련 연구단체나 부동산정보제공업체, 건설업계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종합선물세트형’ 대책이라며 환영일색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업계에서 요구해온 거의 모든 대책이 총망라돼 있다는 점에서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작 부동산 중개업계는 좀더 욕심을 내는 모습이다. 이들은 “5년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빼고는 실효성을 거둘 만한 것이 없다”며 더 확실한 완화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유희 청라서광공인 공인중개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하우스푸어는 중대형 평형에 집중돼 있는데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중소형 평형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은 이 같은 시장의 요구에 정부와 정치권이 크게 호응하는 모양새다. 기왕 규제 완화로 방향을 잡은 이상 최대한 시장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4월15일 정부와 새누리당, 민주당이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통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는 집값 기준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추기로 가닥을 잡은 것도 이런 측면으로 해석된다. 대신 면적기준(전용면적 85㎡)은 사실상 폐지한다. ‘생애 최초 구입 주택’ 취득세 면제 기준도 정부 측 안인 부부합산소득 연 6000만원 이하인 가구가 85㎡·6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한 경우에서 면적기준(85㎡)을 없애기로 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양도소득세 감면 대상 기준이 ‘9억원 이하(가격기준)·전용면적 85㎡ 이하(면적기준)’에서 ‘6억원 이하’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가구로 완화되면 수도권 아파트 수혜 대상 가구가 당초 268만6536가구에서 342만386가구로 73만3850가구(27.3%)가 늘어난다. 면적기준이 폐지되고 가격만 6억원으로 낮추면 사실상 거의 모든 주택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셈이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6억원 초과 주택은 서울 27.0%, 경기 4.6%에 불과했다.
당연히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과연 이번 조치들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권 부동산전문 PB(프라이빗 뱅커)는 “왕성한 주택구입 수요를 담당했던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한 빈자리를 다음 세대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인 것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관련 학계에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하면 부동산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소득이 부진하고 노후 대비도 마땅치 않아 주택 등 자산을 대거 처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층의 소득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 서울 주택 PIR(연평균 소득으로 평균 수준의 주택을 구입하는 기간의 배율)지수는 9.5배로 매우 높다. 연간 번 소득을 9년 이상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중간값 수준의 주택을 구입한다는 뜻이다.
대표적 부동산 비관론자인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지난 4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1 부동산대책 정책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서 “거래 감소는 장기거주를 통한 거주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며 “주택가격 상승이 과연 긍정적인지, 하우스푸어 문제나 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 지난 4월1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사실상 적용하지 않는 것이나 담보대출비율(LTV)을 60%에서 70%로 상향조정한 것은 자칫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변창흠 교수는 이날 정책세미나에서 “DTI는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을 의미하는데 그 비중이 큰 사람들을 ‘하우스푸어’라고 부르지 않느냐”며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자마자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도 “4·1 부동산대책의 본질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 빚을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집을 사라는 뜻”이라며 “앞에서는 DTI와 LTV를 완화해 줄 테니 빚을 내 집을 사라고 하면서 뒤쪽에서는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구제대책을 운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지난 2012년 9·11대책 때도 취득세와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주는 조치를 폈지만 수도권 주택 거래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일부 지역은 오히려 가격 하락세가 더 빨라지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대책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이코노미조선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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