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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한국은행

[아침논단] 선진국서 풀린 돈이 우리에게 위험한 이유

[아침논단] 선진국서 풀린 돈이 우리에게 위험한 이유

  •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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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5.15 23:14

    財政만으로 경제위기 타개 못한 美·유럽 은행들 경쟁하듯 돈 풀어
    유례 없는 '超저금리 시대' 도래
    늦게 뛰어든 日 '부메랑' 맞거나 신흥국들 외환위기 겪을 수 있어
    선진국 금융에 탄력적 대응해야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시대의 경제 상황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묘사될까? 아마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저금리 시대로 규정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부분 국가에서 금리는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낮아져 있다. 대공황 때도 이렇게 금리가 낮지는 않았다. 유럽중앙은행(ECB) 드라기 총재는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예금을 하려면 보관료를 내라는 의미다. 아무리 통화를 풀어도 시장에서 돌지 않고 다시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답답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고육지책이다.

    역사적 초저금리 상황의 근본 원인은 이번 경제위기가 재정위기라는 데 있다.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재정과 금융의 대대적인 합동 부양책을 써도 시원치 않겠지만 위기국들의 재정 상태가 국가 부도를 걱정할 정도로 부실이 심각한 터라 재정 확대는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긴축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기 부양은 오로지 금융완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절름발이 부양책으로는 힘에 부치는 데다 침체기의 금융완화 정책 효과의 한계성 때문에 금리를 웬만큼 내려서는 원하는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제로 금리까지 정책 금리를 화끈하게 내리게 되었고 그것도 부족하자 무작정 돈을 풀어대는 양적완화 정책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가장 발 빠르게 금융완화를 시도한 나라는 미국이다. 대공황 전문가 버냉키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금융완화 정책의 성과는 고무적이다. 엄청나게 풀어댄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 자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실물경제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산 가격이 안정되지 않았다면 실물경기 침체는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유럽도 미국에 이어 금리를 내리고 금융완화에 동참했지만 미국만큼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업률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이런 대조적 모습은 개혁의 성과 차이에 기인한다. 미국은 금융완화와 병행해 경제 내의 부실과 부채 정리 작업이 나름 성과 있게 진행되어 금융완화를 통한 자산 가격 상승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느슨한 유로 체제가 일사불란한 부실 정리와 개혁을 어렵게 만들어 금융완화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도 금융완화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보기에는 시기상조이며 지속적인 재정건전성 개선을 수반한 실물경제 회복이 가능할 때에야 비로소 성공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뒤늦게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금융완화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시장은 환호했고 주가는 몇 개월 사이에 50% 이상 폭등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지금까지만 보면 아베노믹스의 자산 가격 상승효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미국과 유럽의 대조적인 상황이 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돈을 풀어서 해결된다면야 어느 나란들 그런 해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경제 내부의 부실과 부채가 줄어들고 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일방적인 금융완화는 자산 거품만을 키워 오히려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선진국들의 전례 없는 동시다발적 금융완화는 그들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타 국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금융완화로 풀린 유동성이 신흥국들에 집중적으로 유입되면서 이들의 통화가치를 밀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신흥국들도 부랴부랴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하면서 금리 인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유례없는 초저금리 상황이 주요 선진국 주도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향후 저금리가 해소되는 과정의 파장 또한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이들 선진국의 금리가 하락세를 마무리하고 상승세로 반전하게 되면 신흥국에 유입됐던 자금이 다시 유출될 것이고, 그 과정이 급격하게 진행될 경우 경제 상황이 취약한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초저금리 상황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리의 장기 하락이 마감되고 상승 반전할 것이라는 주장이 세를 확대하는 혼란스러운 국면에 놓여 있다. 선진국 금융정책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는 대처하기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요국의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 움직임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 대응을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