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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국민행복 기금?

“빚 뭐 하러 갚나, 나라가 갚아줄 텐데”

“빚 뭐 하러 갚나, 나라가 갚아줄 텐데”

시사저널|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입력2013.04.16 16:27

"수천만 원 빚이 있어도 절반으로 깎아준다고 하던데 왜 나만 안 된다는 겁니까."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대전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민금융종합콜센터 '1397'에는 이런 전화가 하루에 수백 통씩 쏟아진다.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을 대폭 탕감해주겠다고 발표한 뒤 일어난 일이다. 금융 당국이 "연체자 빚 탕감이 이번 한 번뿐"이라고 강조했지만, 홈쇼핑 방송의 매진 임박 멘트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빚 탕감' 약속을 내놓았듯 앞으로도 '선거의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에 이은 행복기금 도입 논란이 계층 간 박탈감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국가 재정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형평성 논란 빚는 국민행복기금





3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점검회의에서 새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행복기금(이하 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18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322만명의 신용유의자를 구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탄생한 행복기금은 지난 2월28일 기준으로 6개월 이상, 1억원 이하를 연체한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 탕감하고, 나머지는 최장 10년간 나눠 갚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원회는 행복기금을 통해 총 32만6000여 명이 채무 재조정을 받고, 향후 5년간 34만2000여 명이 바꿔드림론(전환 대출)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제받는 사람이 모두 67만명에 달할 것이란 계산이다. 3월22일부터 접수를 받아 상반기 중에 본격적인 상담 및 지원에 나선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정부는 개인 워크아웃이나 개인 회생, 파산 등 기존 신용회복제도를 이용 중인 사람에 대해서는 행복기금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행복기금과 비슷한 개인 워크아웃의 경우 원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지만, 금융회사가 이미 상각한 채권(회수를 사실상 포기한 채권)에 대해서만 최고 50%까지 감면해준다. 상각하기 전 채권은 이보다 감면율이 낮게 적용된다. 평균 감면율은 약 30%다. '조건 없이 최고 50%까지' 원금을 탕감해주는 행복기금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역시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1년 이상 성실하게 상환한 사람에게 추가로 10% 정도 깎아주는 제도를 운용 중이지만, 한꺼번에 빚을 다 갚아야 하는 등 구제 조건이 까다롭다.

고금리 학자금 전환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도 행복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환 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신 6%대 이자만 내면 되지만, 원금 감면과 같은 파격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빚을 갚아온 사람을 배제한 채 오랫동안 연체를 거듭한 사람만 공적 자금으로 구제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신용불량자는 신용회복위에 전화를 걸어 "부채 감면율이 더 높은 행복기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절차를 당장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저축은행에 5000만원 이상 예금했다가 영업정지를 당해 돈을 날린 피해자도 "멀쩡한 예금은 못 찾고 대출받은 돈만 탕감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캠코 등 행복기금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기금이 공공성 자금으로 운영될 텐데 국민이 나눠서 빚을 갚아주는 것 아니냐' '성실한 소시민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정책' 등의 비판하는 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