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다] "핏줄에 끌려 돕는 건 결국 도태… 협동하는 유전자만 살아남는다"
입력 : 2013.03.30 00:02
[사회생물학 "집단적 사회성이 인류를 진화시켰다"]
"가까운 혈연끼리 돕는다" 친족선택론 버리고
"생존 경쟁에서 협동하는
집단이 살아남는다"
타인과의 협력·공감 강조한 '집단선택론' 제시
1978년 2월 15일 미국과학진흥회 연례총회. 연설을 기다리던 한 과학자에게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의 머리에 얼음물 한
주전자를 쏟아부었고, 기다렸다는 듯 다른 무리들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윌슨, 당신은 완전히 잘못 생각했어!"
1975년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84·사진)이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출간하면서 '사회생물학'이라는 장르의 학문이 등장했다.
곤충부터 인간까지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학문이다. '남성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는 해석도 이런 사회생물학을 넓게 해석한 것.
이 이론은 생물학결정론이라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인종차별,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생물학'은 현대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의 렌즈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른바 '친족 선택론(kin selection)'은 이 학계의 주류 이론. '피붙이인 형제(유전적으로 가까운
개체)를 위해 희생하는 건 지당하다'는 이론이다. 요컨대 혈연으로 연결된 개체들은 구성원의 번식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윌슨은 몇 년 전부터 자신이 줄곧 지지해온 이론을 스스로 뒤엎기 시작했다. "초기에 이기적 유전자, 즉 유전자 중심의 포괄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을 강조했던 걸 후회한다"고 했고, 급기야 신간 '지구의 정복자'에서는 "집단 선택론이 인류
문명의 기원과 지구 정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모형"이라고 주장했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 이론의 원류이자, 일부에서는 살아있는 최고
생물학자로 추앙받는 논쟁적 석학을 만나 '자기 부정'의 이유를 물었다.
사방이 책과 개미 샘플로 가득한 하버드대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그는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아주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인류 역사는 우월한 유전자의 역사다. 유전자들이 경쟁을 벌여 가장 우월한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왔다. 새 이론은 왜 나왔나?
"친족 선택론으로 맞지 않는 사례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친족 선택론은 기초부터 틀린 거다.
2010년 하버드대에 있는 수학자 2명과 함께 실험을 거듭해 이론을 수정했다. 결론은 집단 선택, 즉 같은 종 안에서도 이타적인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새들은 그들 자신의 새끼를 키우는 대신 그들의 부모를 도와 형제를 키운다. 친족 선택론은 새가 부모의
육아를 돕는 것은 때로 자신의 새끼를 직접 낳아 기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종을 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친족 선택은 또한
혈연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개체들 간 협동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집단 선택론에선 협동성·공감을 비롯한 집단 수준의 형질들이
유전될 수 있고, 집단 간에 생존경쟁이 있을 경우 협동하는 집단이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다고 본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와 공고히 연대하며 유전자 중심적 시각을 대중에게 역설했던 그의 이런 주장은 파격적이다. 그동안 집단 선택론을 반박해 온 유전자
선택론자들은 당황했고 전 세계 진화생물학계엔 파란이 일었다.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 특히 도킨스는?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내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좋은 과학자라면 새 이론이 나왔을 때 앞뒤를 잘 살펴보고 원리를 따져보겠지.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한 번도 과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과학을 '저술하는' 작가(writer)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세게' 발언해 얻은 평판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개미 연구로 이름난 개미학 권위자인 윌슨은 1978년작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와 1990년작 '개미'(The Ants)로 퓰리처상을 두 번 받았다.
윌슨의 화제작 두 권이
올 상반기 한국에서 잇따라 번역돼 나온다. 그가 2010년 쓴 소설 '개미언덕'(원제 Anthill·사이언스북스)이 이번 주 출간됐고, 5월에는
문제작 '지구의 정복자'(원제 The Social Conquest of Earth·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될 예정이다. '개미언덕'은 윌슨의 자전적
소설. 늪을 뒤지고 곤충·뱀·개구리를 관찰하고 채집하며 시간을 보낸 추억과 자기의 과학 이론을 접목한 책이다.
―팔순 나이에
소설이란 새 장르에 도전한 이유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글쓰기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어려운 글을 아무리 써봐야 읽지를
않으니(웃음). 사람들이 과학책보다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나. '문학의 힘'을 빌려보려 했다. 실제 효과가 있더라. 영화 판권으로 팔려 곧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
―'지구의 정복자'를 정의한다면?
"평생 이룬 학문적 업적의 완결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갓 등장한 시기부터 엄청난 창조적 성과를 이루기까지, '사회성'이야말로 인류의 '지구 정복'을 가능케 한 혁명적인 힘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친족 선택을 완전히 부정하는 게 아니라 친족 선택을 포함한 집단 선택, 즉 '다수준 선택'으로 설명했다."
―과격한
진화론자인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은 없어져야 할 존재라 본다. 그런데 선생은 "생명체 보전을 위해서 과학과 종교가 공조해야 한다"고 했다.
진화론자로서 종교와의 화해를 주장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나는 진화론을 믿지만, 창조론자와 친구는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인류는
현재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다른 생명의 절멸을 재촉하는 '병목'에 끼여 있고 환경 보전이 시급하다. 21세기 인류사회의 가장 막강한 양대 진영인
과학과 종교가 함께 손을 잡아야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개구리와 놀던 외톨이 소년, 한국서 유행하는 '통섭'의 원류
에드워드 윌슨은 외로운 소년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내성적인 성격 탓에 혼자 개미·개구리 등 각종 동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앨라배마
대학에서 생물학 학·석사를,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50여년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며 20여권의 책을 냈다. 현재 하버드대학
펠레그리노 석좌교수. 최근 번역 출간된 자전적 소설 '개미언덕'으로 2010년 '시카고 트리뷴' 하트랜드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그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제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통섭(統攝)'이라 번역하면서 국내에도 '통섭' 바람이
불었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더 알고 싶다면
사회생물학의 '원전'에 해당하는 책 중
에드워드 윌슨의 책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생명의 편지' '생명의 미래' '통섭'.
사회생물학은 인문과학 분야에서 사랑받는 주제. 이번 주에도 그 역사와 성과를 점검하는 책이 여럿 출간됐다. 존 올콕 미 애리조나주립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쓴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는 사회생물학 옹호서. 성적 질투심, 강간과 간통, 집단 학살 등의
주제를 다룬다. 붉은날개지빠귀 암컷은 남편의 둥지가 아무리 안락해도 은밀히 혼외 교미를 시도하는데, 이는 여러 동물이 보이는 진화적 행동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퓨처 사이언스'(문학동네)는 첨단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미래 과학 이야기. 인간 몸과 마음의 여러 현상을 인지
발달, 심리, 뇌신경, 정신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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