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25 23:04
한삼희 논설위원

음식 쓰레기 분리수거는 1990년대 중반 김포매립지에서 음식 쓰레기 반입을 거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악취 때문이었다. 그 뒤 음식 쓰레기를 탈수 처리도 해봤고, 식당·아파트마다 건조기·소멸기 같은 기계도 등장했다. 급기야 2005년 음식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이 나왔다. 구청이 음식 쓰레기를 수거해 가면 민간 업체가 그걸 분쇄하고 물기를 짜낸 후 건더기는 사료·비료로 쓰고 음식 폐수는 바다에 갖다 버렸다. 올해부터는 음식 폐수 해양 투기가 금지되면서 음식 쓰레기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주부에게 음식 쓰레기를 별도로 배출케 해 고생시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부들에게 디스포저(disposer·음식 분쇄기)를 쓰게 하면 음식 쓰레기를 따로 모으는 수고도 필요 없고, 고약한 냄새로 인한 고통도 덜 수 있다. 디스포저는 모터로 돌아가는 칼날이 음식 찌꺼기를 잘게 부수는 기계다. 미국에선 가정집 절반 정도가 디스포저를 설치했고 뉴욕은 아예 의무 사항이다. 일본도 1998년부터 디스포저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가 디스포저 사용을 금지해온 이유는 하수 설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음식 폐수가 그냥 하천으로 들어가면 물을 오염시키게 된다. 우리 음식 찌꺼기의 오염도가 유난하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1993년 41.3%이던 하수도 보급률이 현재 90.9%가 됐다. 서울시가 최근 몇 년 사이 공릉·영등포·방화동 1000가구를 대상으로 미국제(製) 디스포저를 설치해주고 실험해봤더니 음식 폐수가 포함된 주방 오수(汚水)의 오염도가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가는 일반 하수의 오염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경기도 여주시에선 디스포저가 하수처리장 가동에 무리를 주는지 실험해보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다는 중간 평가가 나왔다. 처리 능력이 모자라는 하수처리장엔 침전 시설 같은 것을 보강하면 된다. 음식 찌꺼기가 하수관 안에 쌓여 관을 부식시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관거 부실도 그간 상당히 개선됐다. 2002년부터 하수관거 정비에 쓴 돈이 15조원이다.
디스포저 설치를 한번 허용하고 나면 다시 되물리기 힘들기 때문에 신중하긴 해야 한다. 하수 설비가 완비된 신도시부터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다만 어느 도시는 풀고 어느 도시는 계속 규제한다면 규제받는 지역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40만~80만원이 드는 디스포저 비용 때문에 설치 못 하는 가정도 꽤 될 것이다. 이런 지역 격차, 계층 격차로 인한 위화감은 디스포저 설치비의 일정 비율을 하수처리 부담금으로 걷어 공공 하수 설비 정비에 쓰는 등의 방법으로 완화할 수 있다.
환경부는 2004년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검토한 후 "디스포저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9년이 지났다.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 행복'이다. 주부들을 음식 쓰레기 처리에서 해방시켜주고 집 안과 골목에서 고약한 냄새가 사라지게 만드는 일은 새 정부의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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