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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의 박물관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 뇌과학과 고고학이 닮은 점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 뇌과학과 고고학이 닮은 점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 입력 : 2013.01.07 22:39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뇌를 연구하다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올 때가 가끔 있다. 도대체 뇌의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지? 또 뇌의 회로망들은 꼭 저렇게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그럴 때마다 뇌과학은 자연과학이라기보다 고고학(考古學)에 더 가깝다고 한 예전 한 친구의 조언을 생각하게 된다. 로마나 예루살렘같이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도시를 방문하면 비좁고 비효율적인 도로 설계에 놀라곤 한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하다.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세우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대부분 고대도시는 한 번에 논리적인 계획에 따라 설계된 것이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 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기존 길을 유지한다. 있는 걸 없애는 것도 시간과 자원이 들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인간 뇌 안에도 진화적 고대 신경망들이 여전히 보전돼 있다. 그래서 만약 뇌가 컴퓨터라면 인간 뇌 안엔 여러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럼 뇌 안엔 어떤 컴퓨터가 존재하고 있을까? 적어도 3가지 질적으로 다른 운영체제를 가진 컴퓨터들이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교뇌·뇌간 등에 자리 잡은 파충류식 신경회로망들은 '현재' 위주로 작동한다. 지금 먹을 게 눈앞에 보이면 건강이나 도덕적 기준 없이 우선 먹고 본다. 물론 이건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이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로 '과거'를 기억하는 포유류식 뇌가 변연엽(limbic system)을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음식이 앞에 있어도 과거 비슷한 경험을 기반으로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참고 지나가야 하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과거 기억 위주로 결국 '좋다' '나쁘다'라는 도덕적 기준들이 생기고, 이런 기준들이 아마도 감정의 원천 출처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도시 트로이에 9개의 도시들이 겹쳐 있는(왼쪽) 것처럼 비슷하게 인간 뇌 안에도 진화적 고대 신경망들이 여전히 보전돼 있다.
    인간 같은 영장류의 뇌는 신피질(neocortex)이 특히 크고 그 아래 모든 기존 뇌를 덮고 있는 걸 관찰할 수 있다. 그럼 신피질은 어떤 성격의 컴퓨터일까? 진화적 구식 뇌가 현재와 과거 위주로 작동한다면, 신피질은 아마도 '미래' 지향의 운영체제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이론을 세워본다. 그래서 결국 신피질이 발달한 인간은 눈앞에 당장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있어도 식량이 모자랄 수 있는 미래를 걱정해서 지금 눈앞의 행복을 희생할 수도 있는 현명함을 가지게 된다.

    같은 시간과 조건 아래 우리는 대부분 한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뇌는 동시에 현재·과거·미래 위주의 세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맞다' '틀리다' 식의 원천적 기준보다는 미래·과거·현재의 세 가지 시간적 조건 아래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