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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창원북부리 팽나무' 일대에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창원북부리 팽나무' 일대에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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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회에 등장한 창원 북부리 팽나무(보호수)에 대한 실제 문화재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천연기념물 지정조사를 하기로 했다.

드라마에 실제로 등장한 창원 북부리 팽나무(창원시 보호수)는 주변이 탁 트인 마을 산정에 우뚝 서 있으며, 수령은 약 500년 정도, 수고(나무 높이)는 16m, 가슴둘레 6.8m, 수관폭(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최대 폭)이 27m 정도로, 팽나무 중 비교적 크고 오래된 나무에 속한다. 드라마속에서 이 팽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위기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참고로, 팽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하며 중남부지방에 주로 사는 장수목으로, 마을의 대표적인 당산나무 중 하나이며, 현재, 천연기념물 노거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예천 금남리 황목근(팽나무)과 고창 수동리 팽나무 단 2건 뿐이다.

문화재청은 조만간 천연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 등과 함께 이 나무의 역사와 생육상태 등 문화재적 가치를 현장 조사할 예정이며, 마을 주민과 지자체와 함께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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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회에서 창원 북부리 팽나무가 등장하는 장면. /ENA

이날 기사계획을 올렸더니 데스크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드라마에 나왔다고 천연기념물 지정 조사를 하겠다고요? 이런 예가 이전에도 있었나요?”

“저는 처음 봅니다만.”

문화재청 대변인에게 전화해서 경위를 물어 보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것 말이죠. 사실은… 그전부터 천연기념물과에서 그 나무에 대해 조사를 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는데, 드라마에 나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자 조사를 앞당겼다고 하더라고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가상의 지명 ‘경해도 기영시 소덕동’에 있다고 나오는 이 팽나무는 실제론 경남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에 있습니다. 현장 조사를 거쳐 지정 여부가 문화재위원회 안건으로 올라가면 2~3개월 안에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수요일인 27일에 또 기사가 떴습니다. 주말 동안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 팽나무로 몰려, 주차난과 쓰레기 무단 투기로 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조사’ 발표는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오래되고 가치 있는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일 자체는 바람직한 일로 볼 수 있으며 딱히 탓할 일이 아니겠죠.

그런데 말이죠,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팽나무가 드라마 속에서 등장한 시점이 언제인가? 보도자료엔 ‘8회’라고 나왔습니다만, 실제로는 ‘7회’에서부터 등장했습니다. 7회와 8회 연속으로 두 회에 걸친 에피소드 ‘소덕동 이야기’에서 인상적으로 나오는 나무죠. 그렇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회가 방송된 날짜는 언제였을까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팽나무가 등장한 7회는 7월 20일 방영됐다. /나무위키

문화재 관련 취재를 하다가 드라마 방영일까지 확인하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만, 네, 7월 20일 수요일이었습니다.

그러면 7월 25일에 팽나무를 조사한다는 자료가 나왔으니 5일 만에 담당 관청이 움직인 것인가? 아닙니다. 더 빨랐습니다.

기자들이 출입하는 대부분의 관공서는 금요일 오후에 다음 주 ‘주간계획’을 발송합니다. 다음 일주일 동안 대략 이런 자료가 나갈 테니 미리 대비를 하라는 것이죠. 이 계획은 때로 기자들의 일정 관리를 도와주는 반면, 일종의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중지해달라는 요청) 역할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 주 수요일에 이런 발표를 한다고 미리 알려드릴 테니 그 전까지는 관련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실제로 특정 사안을 취재하던 중 금요일의 주간계획에 그게 들어있는 것을 보고 무릎이 풀린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2일 오후에 문화재청에서 기자들에게 발송한 ‘주간계획’에는 바로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팽나무 실제 천연기념물 지정조사”.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보도자료 제목으로 나갔던 것이죠.

7월 22일 오후 언론사에 배포된 문화재청 주간계획.

그러니까 자료가 배포된 22일 오후가 되기 이전에 이미 문화재청 담당 부서인 천연기념물과에서 홍보팀으로 해당 자료가 넘어갔다는 것이 됩니다. 자료가 넘어갔다는 것은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결정됐다는 얘기죠.

그럼 드라마에 이 나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였죠?

20일 밤 9시 이후.

주간계획에 ‘우영우 팽나무 천연기념물 조사’를 밝힌 것은 22일 오후.

그러니까 드라마 방영과 주간계획 배포 사이에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21일(목)과 22일(금)의 오전 뿐이었습니다. 하루 업무 시간을 8시간으로 잡는다면 목요일의 8시간에 금요일 오전의 3시간을 더해 고작 11시간.

이 11시간 동안에 문화재청 내에서 ‘우영우 팽나무를 조사하자’는 발제와 회의와 결정과 보도자료 작성이 초(超)스피드로 이뤄졌던 것입니다…

만약 보도자료에 나온 것처럼 우영우 ‘8회’를 보고 결정한 것이라면, 이것은 21일 목요일 밤에 방송된 드라마를 보고 22일 금요일 오전 단 3시간 만에 모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인데, 이것만큼은 정말 믿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평소에도 이렇게 신속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기관이었던가요? 천만에요.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은 보물로 지정된 지 무려 55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고(유석재의 돌발史전 ‘못난이 불상, 반세기 만의 반전‘ 참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는 아직도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은 유물이 수두룩합니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재산권 행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지표조사나 발굴조사, 현상변경에 걸리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다는 원성이 늘 전국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어찌보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인력과 자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곳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인기 드라마에 나왔다’는 것이 과연 우선순위에 놓을 이유가 될까요? 드라마처럼 이 나무가 있는 마을이 정말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라도 한 겁니까?

때론 기사에 붙은 댓글 한 문장이 미처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기자의 속을 후련히 긁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영우 팽나무’의 조사에 문화재청이 나섰다는 기사를 쓰자 어떤 독자 한 분이 이런 댓글을 써 주셨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이 나무는 분명 멋진 나무이긴 했는데,
드라마 이슈화되니 이제서야 검토하겠다는 걸 곱게 볼 민심이 있을까.
그냥 숟가락 얹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창원의 팽나무를 조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일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니길 바랍니다만, 진정으로 국민이 관심을 가질 정책 홍보에 실패한 나머지 드라마의 인기를 이용해 문화재청의 홍보를 노리는 꼼수는 아니길 바랍니다만, 왠지 모를(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정부 문화재 정책 추진방향과 주요과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그 팽나무 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27일, 문화재청은 청장 언론간담회에서 재탕 내용,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과 담당자 말고는 별 관심 없을 내용으로 가득한 정책 발표, 원론적이고 두루뭉술하며 뻔한 답변, 질문을 비껴간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청와대의 향후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해 질문을 받고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다가,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한테 말하듯 “우리가 그것만 하는 곳이 아니니 이제 그 질문은 그만 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서 반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책 실행을 제대로 한다면, 그리고 ‘우영우 팽나무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 조사 결정’처럼 대단히 신속한 업무 진행이 드라마와 관련 없는 분야에서도 이뤄진다면, 기자간담회 같은 것은 굳이 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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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과 '뉴스 속의 한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은 karma@chosun.com 입니다. 언제든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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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2022.07.29 07:12:50
문재인이 숟가락 대왕 아닌가? 문화재청에 아직도 문재인의 잔재가 남아있나...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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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07.29 09:21:19
역시 공두원들 놀다가 여론눈치나 보는...??? 철밥통님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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