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거제시 주변은 아직 어수선하다. 조선소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강모(48)씨는 “이번 주까지 대우(조선해양) 직원들 휴가라 그 이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본다”면서 “전에 하청 직원들이 밥 먹으러 오면 ‘일은 더 힘든데 받는 돈은 적다’면서 푸념을 많이 했다. 이런 게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소 인력 구조는 맨 위에 원청 업체, 그 밑에 1차·2차 하청 업체들이 줄줄이 딸려 있는 전형적인 다단계다. 원청이 대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하청이 소속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올려줄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그동안 ‘원청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하청 업체들은 지난 2020년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 3사와 하청 업체의 관계는 노예계약과 같다”면서 “원청(조선소)들이 2012년 이후 저가 수주와 과다 수주로 인한 손실을 하청 업체와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대우조선해양이 2016~2019년 하도급 업체에 추가 공사를 발주하면서 제조원가보다도 낮은 대금을 줬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153억원 등 제재 조치를 내렸다. 조선업은 용접공 등 숙련 작업자들을 대거 동원해 노동집약적으로 일하는 게 특징이다. 로봇이 대신하기 어렵다. 저임금을 무기로 한 중국 조선업체들이 급성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업은 불황과 호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국내 조선소들은 다단계 하청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경기 변동에 대처했다. 대우조선 협력사 대표 A씨는 “하청 직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청을 쥐어짜서 원청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는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저임금으로 비롯된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업에 한해 예외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쿼터제를 완화하기로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들이 숙련된 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인력 수급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조선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비단 조선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뿌리산업 등 우리나라 제조업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에 처해 있다.
불법이 관행처럼 된 노사 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파업을 계기로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조선업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나 정치권이 더 고민해야 한다. 지금 같은 원·하청 불공정 관계 속에선 언제든 파업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