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 2명이 지난 4일 방한해 열흘간 머물다 14일 떠났다. 세르기 타루타와 안드리 니콜라옌코, 이들 두 의원은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주요 기업 관계자 등을 만났다. 지난 13~14일 서울에서 열린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는 연사로 참석해 전쟁의 참상, 전후 국가 재건 사업 계획을 밝혔다. 나라를 빼앗기고 침략 전쟁을 치르고도 단기간에 이를 극복한 한국에서의 외침이었기에 그 울림이 더 컸다.

ALC 기획단 일원이자 취재 기자로서 이 우크라이나 의원들을 서울에서 서너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공식 미팅은 물론, 편하게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한 목소리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열세에도 나라를 떠나지 않고 국민에게 버팀목 역할을 하는 젤렌스키 같은 지도자가 있어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침략 세력에 맞서는 우리 정부를 지지해주십시오.”
두 의원은 의례적인 사절단이 아니었다. 니콜라옌코 의원은 미팅 도중에도 급히 논의할 사항이 있으면 메신저앱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핵심 참모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맡고 있었다. 국회와 정부의 대(對)한국 외교 채널이었던 셈이다. 그는 20여 년 전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외교관이 돼서는 4년간 주한 대사관 근무를 한 ‘한국통’이다.
당연히 두 의원은 모두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소속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둘은 야당인 ‘바티키우시아(조국)’ 소속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몸담은 정당 ‘국민의 종’과 라이벌 관계라고 한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맞붙은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바티키우시아의 당수다. 야당 의원인 니콜라옌코 등이 나라를 대표해 해외 원정에 나서 경쟁 정당 출신 대통령의 활약상을 전하며 자국의 전쟁에 우군이 되어달라는 외교전을 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나라 사정이 어려우니 여야가 따로 없어진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정부나 여당 내에서도 한국에 니콜라옌코 의원만큼 호소력 있는 적임자가 없다고 보고, 당적을 불문하고 그를 사절단 대표로 뽑아 급파했다는 뜻이다. 니콜라옌코 의원이나 타루타 의원도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외국에 나와 반대 진영의 대통령을 치켜세우진 못했을 것이다.
풍전등화 같은 우크라이나 처지와 우리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라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여야가 이인삼각 경기를 펴는 모습은 눈여겨볼만하다. 국내외적으로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다. 민생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