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産)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가 연일 폭락하던 지난 5월, 한 청년이 원금 3000만원을 루나에 몽땅 털어 넣고 “3000만원을 3억 만들어 보겠다”며 실시간 생방송을 한 적 있다. “3억 만들어서 집 사고 차 사고 하자. 인생 승부 한번 걸었습니다. 망하면 인생 망한 거죠 뭐.” 호기롭게 시작한 이 방송은 안타깝게도 새드 엔딩. 객기 어린 투기로 불과 6시간 만에 돈이 몽땅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줬다. 마지막엔 청년이 엄마에게서 500만원을 이체받아 재기를 노려보지만, 이마저도 날렸다. 유튜브에서 1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코인 투자자들의 전설로 남았다.

정부가 최근 금융 부문 민생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청년 특례 채무 조정’을 신설해 만 34세 이하 청년층의 이자를 30~50% 감면해주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리가 뛰면서 빚 갚기 어려워진 청년 대출자에게 이자를 깎아주고 원금 상환을 최장 3년 유예해주는 등의 조치가 포함됐는데, 가상 자산 투자자까지 구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역풍이 거세다. 금융위는 가상 자산 투자자의 55%가 2030 세대이며, 최근 자산 가격이 급락해 상당수가 투자 실패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원 이유를 설명했다.
연체 이자 최고 50% 감면, 상환 유예, 유예 기간 중 이자율 3.25% 적용 등 새로 생긴 ‘특례 프로그램’은 모두 이름 그대로 ‘특혜’가 맞는다. 이제껏 열심히 약정 이자대로 갚아온 대출자와 비교할 때, 빚 내서 투자하지 않고 땀 흘려 돈 벌어온 청년들과 비교할 때 그렇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들이 신용 불량자, 실업자 등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게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전체의 이익과 후생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당장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두고두고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 조치는 투자는 개인 책임이라는 상식을 무너뜨린다. 일부 투자자의 실패를 금융권에 부담시키는 건 공정하지도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가 4만8000명쯤 된다는 청년층 지원 대상자 빚 탕감액보다 훨씬 값지지 않겠나.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은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앞으로도 자산 가격이 폭등했다가 폭락하는 사이클은 언젠가 또 찾아올 것이다. 다음번엔 또 뭐라고 할 텐가. 김 위원장은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달라”고 하지만, 청년 특례 채무 조정에 반발하는 다른 청년들과 평범한 국민을 ‘차가운 마음을 가진 이들’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야말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