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오만은 독약’이라던 尹 대통령의 새해 다짐
취임 2달만에 30%대 지지율… 대선 때 겸허한 태도 되찾아야
내각·참모 등 의견 경청하며 국정 중장기 계획도 제시해야

“자신을 변화시키는 인간만이 세상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저부터 바꾸겠습니다. 함께 바꿉시다.”
지난 1월 1일 새해를 맞아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 신년 인사회에서 갑자기 구두를 벗고 카메라 앞에서 큰절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를 보며 오만은 곧 독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우리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고도 했다. 정치 신인 대선 후보로 당 안팎의 논란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힘겹게 버티던 윤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맞서 다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심리적 기점이 이때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캠프 인사들에 따르면, 이때부터 자기 주장을 고집하던 윤 후보가 세대와 출신을 불문하고 다른 사람의 고언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속도감 있게 이를 실천했다고 한다. 수차례 갈등을 빚던 이준석 대표와 극적 화해가 이뤄진 것도 이런 윤 후보의 새해 다짐 직후였다. 윤 후보는 당시 청년 보좌역 간담회에서도 갖은 쓴소리를 듣고는 “뼈아프게 와 닿는다”며 고개를 숙였고 이들을 대거 선대위에 배치해 선거 승리의 초석으로 삼았다. 이 후보와 10%포인트 안팎까지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는 1월 말이 되자 다시 팽팽해졌고, 이후 윤 후보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유세장의 군중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선에 승리하고 그 기세를 몰아 지방선거까지 크게 이긴 윤 정권이 취임 두 달 만에 위기에 빠졌다. 최근 2주간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떨어져 3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정권 내부의 스캔들이나 대형 사건·사고도 없는데 집권 초부터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2배 가까이 나오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던 일이다. 그 이유로 많은 사람은 대선 때와 달라진 윤 대통령의 태도를 지적한다. 일부 장관 후보자 부실 검증 논란에 관한 질문에 “그럼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질은 뛰어난 분들인데 일부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으면 너그러운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현 정권 관련한 야당과 언론의 문제 제기에 잇따라 ‘전 정권과 비교해보라’며 응수했던 것은 ‘오만은 독약’이라며 겸허하게 여론의 판단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 믿었던 국민들 기대에 작지 않은 실망을 안겼다.
윤 정권의 좀 더 근본적 문제는 글로벌 경제 위기 대책을 포함한 국정 운영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수위에서부터 이에 대한 절박감이 부족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무너진 시장경제 원칙, 한미 동맹, 대북 안보 태세 등을 회복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신뢰를 받는다. 하지만 국민들이 함께 꿈을 꿀만한 큰 틀의 새로운 국정 어젠다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정권의 중장기 계획이 가늠되질 않으니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인 국정처럼 비칠 때도 있다. 지금이라도 내각과 비서실이 밤을 새우면서까지 치열하게 토론해 다양한 모색에 나서야 하는데 시중에서는 장관들도 참모들도 눈치만 보며 윤 대통령 그늘에 숨어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또한 윤 대통령이 대선 때 보여줬던 경청(傾聽) 리더십을 회복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기를 좋아하는 다변가 면모를 잠시 거두고, 주변에 귀를 열며 내각·참모들과 ‘계급장 뗀’ 토론까지 수용한다면 참신한 아이디어는 언제든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22년은 이제 절반이 지나갔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나머지 반년 동안 새해 다짐을 실천한다는 각오로 일한다면 조만간 국정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