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약 2만명 규모의 이번 행사는 오전 11시 부스 운영으로 시작해 오후 4시 을지로와 종로 일대 행진 순으로 이뤄진다. 인근에서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 측도 1만5000명 규모의 행진과 집회를 열었다. 교통 혼잡이 예상되자 경찰은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시청 교차로 방면 서울시의회 앞 차로를 부분 통제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광장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적힌 무지개색 표식을 붙인 이들이 80여 개의 축제 부스를 설치했다. 각 부스에서는 ‘꽝 없는 퀴어 복권’ ‘퀴어 부적’ 등의 굿즈를 판매하거나 형형색색의 타투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부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무지개색 마스크와 망토를 쓰고 있었다. 빨간 저고리를 입고 인조 속눈썹을 붙인 ‘드랙퀸’ 분장을 한 참가자에게는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이 5~6명 몰리기도 했다.

이번 행사부스에서는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종교단체가 마련한 부스도 있었다. 로뎀나무그늘교회 등 4개 단체에서 만든 기독교 부스에서는 ‘새 계명을 예수께서 주시니 서로 사랑하라’고 적힌 말씀카드와 엽서, 에코백등을 판매했다. 천주교에서는 성소수자모임 안개마을, 알파오메가 등 4개 단체에서 만든 부스가 설치됐고, 불교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부스를 운영했다. 자신을 기독교 신자로 밝힌 남윤서(21)씨는 “성경의 핵심은 ‘사랑’인데, 실천이 부족했다”며 “실천을 위해 오늘 축제에 참가했다”고 했다.


서울광장 인근에서는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 ‘성소수자전도연합’ 등의 단체는 서울시의회와 청계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부스 안에서는 ‘love is plus’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을 향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가족을 붕괴시키는 동성애 축제 물러가라”고 외쳤다.



이날 낮까지 퀴어문화축제와 퀴어반대집회 참석자 간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 겨루는 볼륨 전쟁이 벌어졌다. 반대 집회 측에서 찬송가를 크게 틀자, 퀴어문화축제 측은 아이돌 가수 (여자)아이들의 ‘MY BAG’이라는 노래를 가슴이 둥둥 울릴 정도로 틀어 맞불을 놨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주먹 대신 소리로 싸우는 것이 퀴어축제의 묘미”라고도 했다.

퀴어문화축제의 한 참가자는 반대 집회 부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세요”라며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날 축제에 참가한 박선우(20)씨는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보통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가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온 스테파니(25)씨는 “내 개인적 선택이 남들을 속상하게 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이번 축제 참가로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이들은 오늘 오후 4시 행진도 벌일 예정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종로1가, 종로2가, 한국은행 교차로에서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자긍심 행진’을 벌인다.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도 4시부터 서울시의회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행진하고, 4시 30분부터는 2개 그룹으로 나뉘어 2000여명은 시의회에서 서울역 교차로 인근까지, 1만3000여명은 시의회에서 광화문으로 각각 행진한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달 15일 퀴어 퍼레이드를 비롯한 오프라인 축제 행사를 허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 시민활동가 등으로 이뤄진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단, 위원회는 ‘신체 과다 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 전시를 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덧붙였다. 서울시는 해당 조건을 어길 경우 다음 해부터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