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2일 서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에 대해 당시 해경은 그해 10월 22일 3차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도박 빚으로 인해 실종 직전 공황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사건 당시 김홍희 해경청장, 윤성현 해경 수사정보국장, 김태균 해경 형사과장 등을 상대로 “고인(故人)에 대해 객관적 근거 없이 ‘정신적 공황’이라고 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작년 7월 국가인권위 결정문과 유족 측 말을 종합하면, 해경이 발표한 이씨 ‘정신 공황’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해경은 이 발표 다음날인 10월 23일 3명의 전문가에게 이대준씨 심리 상태 진단을 의뢰했다. 발표 하루 뒤 자신들의 발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 3명이 모두 이씨의 공황 상태를 언급한 것도 아니다. 1명은 ‘고도의 도박 중독 수준’ 의견을 냈지만, 나머지 2명은 “도박 장애 기준에 일부 해당할 수는 있으나 추정 수준에 불과하고, 당사자가 숨진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사자를 직접 만난 적 없는 상태에서 (해경으로부터) 제공된 자료로 도박 문제 진단 평가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다.

결정문엔 2020년 10월 25일과 10월 30일 해경 내사 보고에 따르면 ‘인터넷 도박 중독에 따른 월북 가능성 자문 결과’의 경우 누구로부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문 의견을 받고 누구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도 적시됐다. 전문가 7명 인터뷰 내용만 요약돼 있고, 이 중 1명만 정신 공황 상태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돼 있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이씨 형인 이래진씨는 통화에서 “해경이 억지로 동생의 월북을 조작하려고 뒤늦게 근거 마련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해경은 인권위에 “여러 전문가 자문을 받은 것”이라고 변론했다. 참고인인 해경 본청 정보과 직원은 “사건 초기, 실종자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취합했다”며 “정신적 공황 상태라는 (해경 발표) 표현은 전문가 자문 의견에 따라 사용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런 식의 조사로 이씨의 공황 상태를 판단한 해경의 발표는 객관성이 떨어져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 이씨가 빚으로 이혼 상태였다는 점을 근거로 이씨 월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통상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하면, 전 아내가 이씨 월북 조작 의혹 관련 각종 기자회견에 나올 이유가 없다”며 “이씨가 가족에게 빚을 떠넘기지 않으려고 ‘서류상 이혼’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서류상 이혼은 불법이 아니다.
이래진씨는 “동생이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며 “회생 의지도 강했다”고 했다. 이래진씨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동생 아내도) 끝까지 빈소를 지키는 등 서로 아껴왔고, 회생도 하려 한 동생이 도박 빚 때문에 가족을 저버리고 월북했다는 전(前) 정부 발표는 조작”이라고 했다.
이씨의 회생을 상담했던 변호사는 지난달 TV조선 인터뷰에서 이씨가 2020년 2월부터 빚 탕감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월급의) 일정 금액만 내면 다 면제가 된다고 생각을 하시니까 굉장히 흡족해하셨고, 되게 좋아하셨다. 서류들을 전부 다 꼼꼼히 잘 갖다주셨던 분”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