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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의 시각[기자의 시각] 펜스가 당적을 바꿨던 이유노석조 기자입력 2022.07.12 03:00

[기자의 시각] 펜스가 당적을 바꿨던 이유

입력 2022.07.12 03:00
 
 
 
 
 

13일 개막하는 제1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방한한다는 소식에 그의 행적을 살펴봤다.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공화당 유력 정치인으로 부통령까지 지낸 그가 젊은 시절엔 ‘당나귀(민주당 상징)’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와 다른 형제 모두 존 F 케네디 대통령 관련 기념품이라면 빼놓지 않고 수집할 정도의 열성 민주당원이었다. 펜스 가족 모두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을 찍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는 카터의 패배로 끝났다.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이겼다. 펜스는 영화배우 출신 정치인 레이건이 대통령으로서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레이건에 의해 펜스의 운명이 바뀌었다. 레이건의 국정 운영에 펜스가 감화돼 당적을 공화당으로 옮겼다. 그렇게 공화당원이 된 펜스는 훗날 선거에 출마해 몇 번의 낙선 끝에 하원의원이 됐고, 인디애나 주지사, 부통령을 거친 거물이 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로이터

펜스는 자신의 정치관을 바꾼 레이건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넓은 어깨(broad-shouldered) 리더십’이라고 이름 붙였다. 선뜻 이해되지 않아 미국인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들 설명을 정리하면 이랬다. “레이건 취임 당시 미국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어.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2차 석유 파동도 터져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올랐지. 금리는 20%대, 물가상승률은 13%를 훌쩍 넘었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까지 갔어. 갓 집권한 레이건 입장에선 이런 골칫거리를 잔뜩 물려준 전임 대통령을 탓할 법도 했지. 그런데 레이건은 부담을 고스란히 자기 어깨에 짊어지기로 했어. 이런 책임감 있는 모습에 ‘넓은 어깨 리더십’이란 표현이 나온 거야.”

 
 

레이건은 욕을 당장 먹더라도 옳은 일이면 소신 있게 추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세·법인세를 낮추는 감세 정책, 그리고 규제 완화 정책이었다. 민간의 경제 활동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것이 실질적인 세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 봤다. 실제 이 같은 정책은 이후 25년간 인플레이션 없는 미국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건은 임기 8년 내내 하원이 여소야대인 환경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는데, 수시로 야당 원내대표에 전화를 걸어 설득전을 벌였다고 한다. 말솜씨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나이 오십을 넘길 때까지 민주당원이었던 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40년 전 미국의 상황과 지금 한국 상황이 꽤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초 일성은 “(경제 태풍으로) 창문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린다”였고, 첫 국회 시정 연설은 “초당적 협력 당부”였다. 민주당 오바마 전 대통령도 “존경한다”고 한 레이건 리더십은 좋은 참고서가 될 듯하다.

 
 
The Two Koreas correspondent & Author of "the Secret of Israel military forces(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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