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를 9년 전 만났었다. 취재원과 기자로서가 아니라 집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였다. 2013년 허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여름방학을 맞아 외국 학회에 가느라 학교 앞 원룸 아파트를 잠시 세 놨고, 저널리즘 연수차 미시간대에 간 기자는 임시 거처로 그의 집을 2주 빌렸다. 집은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반년 후 허 교수가 프린스턴대 연구원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국인이 드문 대학도시 앤아버에서 이 ‘옛 집주인’으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다. 그가 자취 생활 선배인 데다, 세간살이까지 넘겨줬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학자와 내내 “준이씨, 청소기 먼지통 어떻게 비우나요?” “이런 냄비 밥솥은 물을 얼마나 잡죠?” 같은 대화만 했다. 한 번은 그가 낡은 트렁크를 낑낑대고 끌고 왔는데 열어보니 각종 세제와 사무용품이 가득했다. 이번에 필즈상 수상 소식을 듣고 “그 트렁크 뚜껑이 안 잠겨서 버렸는데, 사인 받아 보관할 걸 그랬네요”라고 연락했더니 “청소기 비싼 건데 그것도 버리셨어요?”란 답이 왔다.
각 분야의 천재형 인물을 여럿 만났지만 허 교수는 단연 독특했다. 이과 천재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인간 관계에 서툴 것이란 편견을 깼다. “과학 기자가 되고 싶었다”면서 기자의 취재 경험담에 큰 흥미를 보였다. 예술과 역사에도 밝았다. 상대가 중언부언하면 지겨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긴 했다. 집중력이 강한 만큼 허례허식과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당시 그가 “약혼자가 있는데 결혼식이 귀찮아 혼인신고만 하려 한다”고 하길래, 주제넘게 “한국에서 그러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텐데?” 했더니 기자를 더 이상하게 바라봤다.
가장 놀란 건 시인이 되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피아노와 작곡에 빠졌던 것, 물리학과 천문학까지 공부하다 뒤늦게 수학을 전공했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서 보기 힘든 경우다. 허 교수처럼 본인이 워낙 뛰어나 영역을 넘나드는 지적 방황조차 의미 있는 결과로 수렴할 수 있고, 자식의 자유로운 천재 기질을 이해하고 받아준 엘리트 부모에 좋은 스승까지 만나야 가능할 것이다.
허 교수를 보며 종일 학원에 잡혀 일사불란한 입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어린 시절의 일탈과 소요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들은 수학을 잘하기 위해 영어는 유치원에서 떼야 하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명문 중·고 입시가 시작되며, 대입 성적은 고교 입학 전 사실상 판가름 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이끌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조직과 사회에 천재만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인류 발전에 기여할 자질이 있는 아이들을 줄 세워 의대와 로스쿨에 몰아넣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