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가장 오래 전 그려진 서양식 세계지도가 골동품업자에게 도난당한지 약 30년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예천박물관은 조선 현종대에 제작된 만국전도(萬國全圖·보물 1008호)를 기탁받았다고 6일 밝혔다. 만국전도는 예천군 용문면 출신으로 조선시대 승정원 승지를 지낸 박정설(1612~1693)이 만든 현존 국내 최고(最古)의 서양식 세계지도다. 1661년(현종 2년) 박정설은 이탈리아 선교사 줄리오 알레니가 만든 세계지리서 ‘직방외기(職方外紀)’에 담긴 만국전도를 참조해 세계지도를 그렸다.
줄리오 알레니가 그린 원본 만국전도에서 우리나라는 ‘조선(朝鮮)’이라는 국명과 형태만 표시돼 있었다. 박정설은 여기에 경상·전라 등 당시 조선 8도와 탐라(제주)의 지명을 써넣고, 원본에는 없던 울릉도와 백두산을 그려넣었다. 세계지도답게 아시아 및 유럽·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남극과 북극 또한 그려져 있다.
앞서 지난 1989년 정부는 만국전도를 보물로 지정했다. 소유주는 박정설의 후손인 예천군 함양박씨 문중의 박정로씨였다. 그러던 1993년 박씨가 거주하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자택에 골동품업자 A씨가 침입해 만국전도를 훔쳐가면서 보물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도난 이후 20여 년이 흐른 2018년 11월 만국전도는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A씨가 만국전도 판매를 위해 업자를 물색하던 움직임이 경찰과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팀의 수사망에 걸려든 것이다. 수사 결과 만국전도는 A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경북 안동의 한 식당 벽지 안에 숨겨져 있었다. 경찰과 문화재청 등은 회수한 만국전도를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센터에 보냈다. 이곳에서 만국전도는 보존 처리 후 보관됐다.
회수 이후 고향 예천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A씨는 “만국전도를 훔친게 아니라 돈을 주고 샀다”며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올해 초 대법원은 “A씨가 정당한 방법으로 문화재를 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지난 1일 함양박씨 미상고택 현소유주 박재문(49)씨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임시 보관 중이던 보물 만국전도와 소장했던 고서적 116점을 예천박물관에 기탁했다. 도난된지 30년만에 만국전도가 고향 예천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천박물관은 오는 10월 독도의 달에 만국전도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방침이다. 예천박물관은 만국전도를 포함해 국내 공립박물관 중 최대 규모인 2만 2000여점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도난당한 문화재가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문화재 환수 기념식과 기획 전시 등을 개최해 군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예천 문화의 멋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