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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구본무-이재용 등 재계 총수들이 꼭 만나려한 왕양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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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현
- 주북경특파원
- E-mail : ahnyh@chosun.com
- 1999년 1월 조선일보에 입사해 편집부·스포츠레저부·경제과학부..
- 1999년 1월 조선일보에 입사해 편집부·스포츠레저부·경제과학부·사회부·정치부 등을 거쳐 현재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특파원 부임 전에는 정치부에서 북한·외교 관련 기사를 주로 썼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꿈’을 외치는 것처럼 ‘한국의 꿈’에 관심이 많다. ‘산업화의 꿈’, ‘민주화의 꿈’을 거쳐 이제는 ‘통일의 꿈’을 꿀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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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1999년 조선일보 입사
입력 : 2015.01.27 13:37 | 수정 : 2015.01.27 16:56
왕양(汪洋·60)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22~24일 방한 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 줄줄이 단독 면담을 가졌다. 감옥에 있는 일부 기업인을 제외하고 이름을 알만한 기업의 경영자라면 거의 예외 없이 왕양을 만나 눈도장을 찍었다. 왕양이 누구이기에 대기업 총수들이 집합했을까?
- 위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왕양(汪洋) 중국 부총리 면담 장면, 왕양 부총리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왕양 부총리의 면담 모습/삼성,현대차,LG그룹 제공
정치국원 중에서도 왕양이 주목받는 이유는 차기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무위원 7명 중 시진핑·리커창을 제외한 5명은 오는 2017년 당 대회에서 연령 제한에 걸려 모두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왕양은 이미 2012년 당 대회 때도 상무위원 승진이 점쳐졌던 인물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후춘화 광둥성 서기 등과 함께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왕양은 국무원 부총리로 리커창 총리를 보좌하며 무역·투자·농업 등의 경제 업무를 맡고 있다. 국내 기업의 대중 수출과 투자 등을 직접 담당하는 것이다. 왕양의 말 한마디가 중국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왕양이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면 그의 입김은 더 세진다. 주석·총리를 포함한 상무위원 7명은 각각 고유한 역할이 있다.
현재 중국 경제는 리커창 총리와 함께 장가오리 상무위원이 같이 담당한다. 중국의 ‘경제 1번지’인 광둥성 서기를 지낸 왕양이 상무위원회에서도 경제 분야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홍콩 동방일보는 반부패 사령관 역할을 하는 왕치산 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 자리를 왕양이 이어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면 담당 업무 외에도 모든 분야에서 자기 지분을 갖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왕양과 ‘관시’를 맺을 수 있다면 중국에서의 사업이나 활동에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
왕양은 ‘스토리’가 있는 지도자다. 중국에서도 주목받는 지도자가 되려면 남과 다른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왕양은 1955년 안후이성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7살이 되던 1972년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위해 식품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공장에서 능력을 발휘한 그는 공산당 간부 학교 학생으로 발탁돼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왕양을 주목한 것은 덩샤오핑이었다. 1991년 안후이성 퉁링(銅陵)시 시장이던 왕양은 지역 신문에 ‘잠에서 깨자, 퉁링’이란 칼럼을 실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보수 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왕양은 개혁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덩샤오핑은 주룽지 등 당 간부에게 이런 왕양의 발탁을 주문했다. 이후 왕양은 1993년 38살의 나이로 안후이성 부성장에 기용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2003년 국무원 비서장, 2005년 충칭시 당 서기, 2007년 광둥성 당 서기를 거쳐 2012년 국무원 부총리로 승진했다.
왕양은 2007년 12월 광둥성 서기 시절 ‘등롱환조(騰籠換鳥)’라는 말을 했다. ‘새장을 들어 새를 바꾼다’는 뜻으로 낙후 기업을 퇴출하고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광둥성을 채운다는 의미다.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지역 제조업체들이 잇달아 쓰러지는 위기를 맞았지만, 왕양은 ‘등롱환조’의 구조조정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광둥성은 지난해 중국 지역 중 처음으로 1인당 GDP 1만 달러 시대를 맞았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