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
-
- 김여환
-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 E-mail : dodoyun@hanmail.net
-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
-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과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던 그녀는 졸업 후 13년, 서른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고위 과정을 수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학박사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의 의학 지식보다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호스피스 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호스피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항암 요리를 만들어 환자의 가족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 등 무채색의 호스피스 병동을 ‘컬러풀 호스피스’ 병동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5년 동안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국가암관리사업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2011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사연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입력 : 2013.12.28 03:21
말끔한 표정의 신복연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았다. 나는 점심식사를 뒤로 미룬 채 진료실에서 미적거렸다. 거칠고 빠른 호흡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신복연 할머니는 86세 말기 위암 환자다. 305호에 입원한 11살짜리 여자애와 비교한다면, 죽음이 뭐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 꽉 찬 나이다. 그래도 호상(好喪)이란 없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 버리는 죽음이라는 것은 어떤 나이에도 아쉬운 순간일 뿐이다. 나도 반찬냄새 풀풀 풍기면서 사망 선언하는 것이 찜찜해서 그저 기다렸다. 김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빼꼼히 열고, “과장님, 사망 선언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이제 호흡이 영원히 멈춘 모양이다.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났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선언 뒤에는 언제나 남아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
할머니의 둘째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우지마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 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우지마라고 신신 당부를 했어요.”
“아…. 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멋진 유언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 두었던 꽃 분홍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
생전(生前)에 연락해도 오지 않던 전처와 아들이 환자가 떠난 6개월 뒤에 경찰을 대동해 떡하니 나타났다. 노인의 이종 사촌동생이 꿀꺽한 500만원을 되찾기 위해서다. 나는 마지막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희한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었다고.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탁구 기본 기술] 눈 + 걷기 + 건강 > [9988] 인간의 종말 어떻게 살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스피스 의사가 추천하는 웰다잉(well-dying) 10계명 (0) | 2015.01.14 |
---|---|
사람들은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갈까? (0) | 2015.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