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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기본 기술] 눈 + 걷기 + 건강/[허경구커플링법칙] 물그릇,허공병

물과 그릇, 허공과 병

  • 물과 그릇, 허공과 병

  •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E-mail : aronge76@naver.com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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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07 15:56 | 수정 : 2015.01.07 16:08
<몸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뇌가 연동하여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의 기원

퇴계와 율곡이 보는 리와 기의 원리를 다시 한 번 세세하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율곡은 자기의 입장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주장하였다. 반면 퇴계는 자기 입장에 대해 율곡보다는 자신감이 덜한 듯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율곡은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물은 그 담은 그릇이 네모냐 둥그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고 허공은 병의 크기가 크고 작음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한다”(水遂方圓器, 空隨小大甁). 이 비유는 리와 기의 관계를 상당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반면 퇴계는 “리가 동하면 기가 따라서 생하고 기가 동하면 리가 따라서 나타난다”고 봄으로써 리와 기가 각발하는 것으로 보고 리는 기의 주재(主宰)자로 귀한 것이요 기는 리의 처리를 기다리는 천한 기재(器材)로 보았다. 리와 기가 같이 발한다느니 또는 따로 발한다느니 하는 각발(各發)설과 공발(共發)설은 퇴계와 율곡을 갈라놓은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다.

물론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친했고 두 사람 다 살아생전에는 별 갈등 없이 잘 지낸 사이었지만 그 후학들은 바로 이 각발설과 공발설을 가지고 삼백년 이상을 싸웠던 것이 사실이다. 율곡의 비유는 움직이는 것은 그릇이기 때문에 물이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릇이 동하면서 물도 동시에 동할 수밖에 없다. 그릇은 어떤 경우에도 단독으로 동하지는 못한다. 그릇과 물은 동시에 동한다는 뜻이다. 물과 그릇의 관계는 선후가 없는 동시적 현상이다.

이 비유만으로는 율곡이 옳다. 율곡의 주장은 기속에 이미 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기 때문에 퇴계의 리가 발하면 기는 거기에 따라간다는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는 틀린 얘기고 리도 발할 수 있고 기도 발할 수 있다는 호발(互發)설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율곡 측의 주장이다. 율곡의 주장은 다음 한마디로 요약된다. 어디까지나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은 리일 뿐이지만 양자는 공시ㆍ공발한다.

그러나 퇴계는 사단(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른 것이요 칠정(喜ㆍ怒ㆍ愛ㆍ樂ㆍ哀ㆍ惡ㆍ欲)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탄(乘) 것으로 보아 리와 기가 각자 발할 수 있는 작동 체계를 갖춘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먼저 리던지 기던지 한쪽이 발해야 다른 쪽이 따르든지 타든지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곧 각발설이다.

율곡은 물과 그릇과의 관계, 병과 허공과의 관계로 리기의 공존공발의 동시성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과연 모든 사물 관계가 이와 같은지는 하나하나 대비해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반대로 퇴계의 설명에는 율곡과 같은 구체적인 비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퇴계는 리는 기보다 상위개념으로 파악하고 있고 기는 리의 하위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퇴계는 리는 기를 다스리는 장수요 기는 리에 종속되는 졸병으로 보았고 또 리는 기를 통활하는 주재(主宰)요 기는 그에 속한 재료로 보았다.

율곡은 리와 기가 같이 동시에 발하는 즉 호발한다는 퇴계의 설을 부정하여 리와 기의 독립성을 부정했다. 그래서 퇴계의 이발설을 부정하였다. 율곡은 리와 기의 이물(二物)설, 선후(先後)설을 부정하였다. 또 퇴계가 사단을 리의 발로 보고 칠정을 기의 발이라 하여 이원적으로 본데 반하여 율곡은 칠정은 사단을 포괄하고 있고 모두다 기의 발이라는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기질지성이 본연지성을 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율곡은 리기, 사단칠정 본연지성 기질지성에 대해 퇴계의 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후기 문묘종사와 예송. pp 52,53) 그러나 퇴계는 어느 편이냐 하면 기에 리가 보태짐으로써 하나의 현상을 이룰 수 있고 기에 리가 탐(乘)으로써 기가 리의 본연지성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았다. 퇴계에게 리와 기는 각각의 존재요 각각의 독립성을 유지하되 리는 하나의 성스러운 샘물이요 기는 인간과 세속의 더러움에 부분적으로 남아도 오염된 물질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에 리가 더해짐으로써 그 선적 요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퇴계의 제자들은 퇴계의 이런 사단칠정의 정밀한 구분을 “천고의 감추어진 자물쇠를 열었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반면 율곡에 대해서는 “변설이 그치지 않는 명민한 천재”로서만 인정할 뿐 그의 주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리와 기의 문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원리일까? 조선조 때 임금에게 올린 상소의 한 구절을 보면 리기가 왜 중요하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리기의 구분은 곧 학문상에는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욕심 사이의 경계를 엄밀히 구분함으로써 옳고 그름 사이의 판가름이 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p.140) 성리학의 주제인 사단칠정론은 그때로는 중국서 수입해온 하나의 정신적, 이념적 그리고 관념적 담론이었다. 그런데 무엇에 홀려서 우리의 선조들은 이 문제에 그토록 온정신을 빼앗겼던 것일까? 사단칠정이란 조선조의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은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A.D. 79년 후한(後漢)의 건국 초에 중국의 학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치, 즉 성리(性理)에 관한 물음이었다. 그때 중국의 유학자들은 동중서의 주재 하에 그때로써는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세미나를 개최했었다.

 

그 주제는 음양오행이었다. 이 모임에서 중국의 유학자들은 그때까지 통용되고 있던 중국 철학의 패러다임의 표준을 바꿨다. 그때 발행된 백호통의(白虎通義)에 음양오행에 대한 표준적인 의미(통의)가 담겨 있다.


그 바뀐 패러다임의 표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음양이란 무엇인가?

 

둘째, 오행이란 무엇인가?

 

셋째, 상생과 상극은 무엇인가?

 

첫째인 음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동중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는 음양의 기로 꽉 차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여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는 또

 

오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오행의 순서는 목-화-토-금-수이다. 나무(木)는 불을 낳고 불(火)은 흙을 낳고 흙(土)은 쇠를 낳고 쇠(金)는 물(水)을 낳는다(물은 나무를 낳는다). 첫째가 둘째를 낳고 둘째가 셋째를 낳고 셋째가 넷째를 낳고 넷째가 다섯째를 낳는다.


이것이 이른바 “비상생(比相生)이다.

 

쇠는 나무를 이기는데 중간에 물이 끼어 있고(金水木) 물은 불을 이기는데 중간에 나무가 끼어 있고 (水木火) 나무는 흙을 이기는데 중간에 불이 끼어 있고(木火土) 불은 쇠를 이기는데 중간에 흙이 끼어 있고(火土金) 흙은 물을 이기는데 중간에 쇠가 끼어 있다(土金水). 이것이 이른바 간상승(間相勝)이다.”

 

행(行)이란 운행한다(行)는 의미이다.

 

저마다 운행이 같지 않으므로 오행(五行)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오행이란 다섯 가지 기능(五官)의 뜻한다. 인접한 두 행은 상생관계이고 하나 건너 두 행은 상극관계이다. (중국 철학사(하), 주23, pp,19-20)


동중서는 전국시대 이래 유행해오던 음양오행사상에 하나의 통일적인 질서와 그에 따른 통일적인 해석과 통일적인 도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하나의 철학적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런 구조적 도식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예시는 전혀 없었다. 음양오행을 발견해내고 이것을 유행시키고 그리고 여기에 통일적인 도식과 해석을 부여한 사람들은 막상 음양오행의 합리성을 과학성을 확인하고 제시하는 방법에는 전혀 무지했었다.

따라서 음양오행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과 일방적인 도식을 때로는 무리하게 적용하려고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음양오행사상은 하나의 선험적인 내재적 초월성을 그 합리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후험적인 증험을 거부하는 하나의 형이상학적 관념일 뿐이다.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측면뿐 만 아니라 거기에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증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그 사실을 이 글에서는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그 과학성에 대한 증험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우선 다음 회에서 일차적으로 선보이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하나의 의문이 있다. 그것은

 

음양오행과 리-기와의 관계다.

 

음양오행 중 어떤 것이 리며 어떤 것이 기인가 그리고 음양오행의 구체적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은 만물을 음양오행을 통해 만들어냈고 이때 기와 리는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졌다. 인간은 탄생하면서 리와 기를 받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받은 사단과 칠정은 인간에게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 본 칼럼과 관계있는 필자의 글들은 필자의 소개란을 참고해 주십시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